학과 정원 유연해져야 '신산업 인재'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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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정원 유연해져야 '신산업 인재' 키울 수 있다

입력
2021.03.24 04:30
수정
2021.03.2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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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이 된 상아탑]
<하> 대학에 미래를 심자

편집자주

산업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해야 할 대학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턱없이 부족한 IT 개발자를 모셔가려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연봉을 높인다. 상아탑이 산업 흐름에 뒤처진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카이스트 전산학부 윤성의 교수 연구실 소속 학생이 로봇 작동을 테스트하고 있다. 카이스트 제공


카이스트(KAIST)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이강욱(22)씨는 지난 1월 모바일 앱 개발 합숙캠프인 ‘몰입캠프’에서 약 한 달을 보냈다. 3학년 때 처음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다 전산학과를 복수전공했고, 내친김에 실제 업계에서 요구하는 수준까지 코딩을 배워보고자 선택한 캠프다.

이씨는 “학교 수업이 정해진 과제를 하는 거라면 캠프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협업을 통해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몰입캠프에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찾아와 홍보도 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는 몰입캠프를 통해 알게 된 레이싱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쓰리세컨즈’에서 이번 달부터 인턴으로 일한다.

몰입캠프는 게임 ‘배틀 그라운드’를 만든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과 카이스트의 합작품이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도 지낸 장 의장은 학교와 기업 간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카이스트 전산학부장인 류석영 교수와 연결됐다. 2015년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처음엔 카이스트 학생만 받다가 이제는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다른 대학 학생들도 지원한다. 모집 규모도 20명에서 60명으로 늘렸다.

몰입캠프의 성공에 고무된 장 의장과 카이스트 전산학부는 지난해 12월 ‘소프트웨어(SW) 아카데미 정글’ 과정도 만들었다.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설문조사를 해 원하는 인재상을 물은 뒤 그에 맞춰 커리큘럼을 짰다. 어렵기로 악명 높은 OS(운영체제) 실습과목까지 넣었고, 과정 내내 합숙까지 해야 하는 강도 높은 프로그램이다.

난도가 높아 걱정도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류석영 교수는 “실습이 부족하다고 느낀 다른 대학의 전산 전공자들뿐 아니라 인문대 출신까지 지원해 경쟁률이 10대 1에 육박했다”며 “아직 첫 과정 졸업생도 안 나왔는데 마켓컬리나 토스 같은 업체들에서 벌써 채용 문의가 온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성공에서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있다. 두 과정 모두 단기적인, 비정규 과정이다. 장 의장이 애초 몰입캠프를 만들려 했던 건 서울의 대학들이었다. 그런데 다들 학내 규정 등을 들며 망설였다. 류 교수는 "그나마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카이스트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신산업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선 기존 전공, 학과와 무관하게, 그야말로 실전에 준하는 과정을 대학들이 탄력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17일 대전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한국일보를 만난 류석영 학부장은 "자유로운 교육과정 운영이 카이스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대전=박소영 기자


학과 정원 없애 교육과정 탄력적으로 만들어야

카이스트는 무학과제도를 운영한다. 신입생이 학과 선택 없이 1년을 보내게 하는 것. 또 학부별 정원 규제도 없다. 2학년 때 자유롭게 원하는 전공을 택할 수 있다. 그 때문에 2016년과 비교해 지난해 전산학부 전공 학생은 약 2배, 복수전공·부전공생도 7배 이상 늘었다. 카이스트 학생 가운데 70% 정도가 전산을 전공 혹은 복수전공하는 셈이다.

전산학부의 팽창은 전공의 경계를 자연스레 무너뜨린다. 기계과 교수가 전산학부에 로봇 수업을 개설하는 것처럼 이공계 내부의 문턱이 사라지는 것은 기본이고, 인공지능(AI)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지난 학기부터는 인문학과 융합한 ‘인공지능과 윤리’ 과목이 만들어졌다. 류 교수는 “세부 전공 간 융합은 물론, 노령화 시대 기술이란 무엇인가 같은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인문사회학과도 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관건은 학과 정원의 유연화다. 류 교수는 “지금 개발자가 부족해 연봉이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수요를 맞추려면 학과 정원은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과 정원이 유연해져야 산업 현장의 요구와 실태에 맞춰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16일 대림대 김필수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교수도 기득권 버리고 재교육 받아야

대림대는 지난해 자동차학과를 미래자동차학부로 개편하고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자동차 엔진실습, 디젤기관실습 등 내연차 관련 과목을 줄이고, 학부명처럼 미래차 관련 과목을 대폭 늘렸다. 김필수 교수는 “학과 개편을 4, 5년 전부터 준비했다”면서 “현대차 신입 연구원들을 우리 학교가 실무 훈련시키며 업계 변화를 보고 빨리 움직인 편”이라고 말했다.

대림대도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관련 교수진 대부분이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연차 전공자가 다수라는 말이다. 차이점은 산업 변화에 맞춰 교수들도 꾸준히 재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 재교육을 바탕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 실무 같은 과목을 개설해 가르친다. 김 교수는 “대학 자체가 유연성이 크고 기업과 소통이 많다보니 대부분의 교수들이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재교육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 왕태석 선임기자


이를 바탕으로 대림대 교수들은 아예 미래차 기술에 대한 교재를 직접 만든다. 하이브리드차, 전기차를 분해해가며 연구하고 가르치다 보니 아예 정식 교재를 만들어보자는데 생각이 미쳐서다. 김 교수는 “표준적 교재라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미래차 분야는 연구인력은 물론 진단 평가, 정비인력도 제대로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 ‘미래차공학개론’, ‘전기차 기초정비 시스템’이 차례로 출간되면 아주자동차대학, 인하공업전문대학, 동의과학대학 등 자동차관련 교수들과 함께 공동 워크숍을 열고 전면적인 교육과정 개편까지도 논의한다. 김 교수는 “교수도 사회 변화에 맞춰 재교육을 받고 교육과정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과기대 MSDE학과 학생들이 18일 서울 노원구 서울과기대 테크노파크에서 CAD 실습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간섭보다 '자율과 책임' 분명히 해야

탄력적인 교육과정 개편엔 이미 호평받는 모델이 하나 있다. 서울과학기술대의 MSDE학과다. MSDE는 반도체부터 원자로까지 각종 생산 시스템의 설계를 가르치는 학과인데, 가장 큰 특징은 산업계 수요에 맞춰 3년마다 커리큘럼을 다시 짜고 그에 맞춰 교수진을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학과의 중심이 자연스레 기계공학, 산업공학에서 반도체, 배터리, 소프트웨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MSDE학과 01학번 출신인 조낙균 교수는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중공업 경기가 좋아 기계공학, 산업공학, 금형설계공학 수업이 많았는데, 지금은 나노공학, 전기?전자공학 수업이 더 많다"고 말했다.

현장 요구는 더 빨리 반영된다. 조 교수는 3차원 그래픽 설계를 다루는 CAD 과목을 가르치는데, 이 수업만 해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프로엔지니어’에서 ‘솔리드웍스’로 바꿨다. 산업현장에서 더 많이 쓰여서다. 조 교수는 "저도 기업에 있을 때 써본 적이 있어서 따로 교육받진 않았지만, 이럴 경우 교수들도 프로그램을 익힌 뒤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엔 협업도 작용했다. MSDE학과는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과 복수학위 프로그램 운영 협약을 맺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최상위 가치로 둔 것이 '현장' 그리고 '실습'이다. 심동하 학과장은 “기존에 4학년이 진행하던 캡스톤 디자인도 3학년 2학기로 확대하고 있다"며 "실습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캡스톤 디자인이란 논문 대신 산업계가 요구하는 작품을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한국의 대학들은 학위와 논문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다보니 이런 톡톡 튀는 제도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의 괜찮은 인재를 교수로 영입하려 해도 지레 손사래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심 학과장은 “학과, 전공은 이래야 한다고 일률적으로 정해주기보다 대학과 교수에게 자율권을 좀 더 많이 주고, 그 성과에 따라 평가하는 식으로 대학의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 박소영 기자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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