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동네 보냈는데…목줄에 괴사된 채 옛집 떠돌던 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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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동네 보냈는데…목줄에 괴사된 채 옛집 떠돌던 황구

입력
2021.03.25 10:18
수정
2021.03.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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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네에 보낸 지 1주일 만에 엄마가 보고 싶은지 목줄을 끊고 왔더라고. 개는 커가는데 목줄은 죄어오고.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세상 잡히질 않아서 걱정이 많았지.

찬돌이 보호자 류모씨

지난달 25일 오후 경기 파주시 검산동 류모씨 집 앞에 모인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어릴 때 채웠던 목줄로 목 주변 피부가 괴사된 채 동네를 떠돌던 황구(털 빛이 갈색인 개) '찬돌이'가 구조 후 치료를 받고 한 달 만에 돌아오는 날이어서다. 찬돌이를 구조한 동물구조전문단체 동물구조119 활동가들과 제보자 박모씨, 지역 주민들은 찬돌이를 위한 새집을 지어주는 데 한창이었다.

목줄 끊고 어미개 찾아온 찬돌이. 동물구조119 유튜브 캡처


6개월 이상 옛집 주변 떠돌던 개

지난 1월 20일 오후 경기 파주시 검산동 주택가를 지나던 주민 박모(59)씨는 목에 핏자국이 선명한 황구를 발견했다. 이웃이 강아지 시절 기르던 개다. 그런데 개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차에서 내려 자세히 살펴보니 목줄이 죄어온듯 목 아랫부분 피부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씨는 마침 귀가하던 이전 보호자를 만나 사정을 물었다. "어렸을 때 옆 동네로 보냈는데 엄마개가 보고 싶어 목줄을 끊고 돌아와 집 주변을 맴돌았다"며 "여러 번 잡으려 했지만 도망만 다녀 걱정하고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름은 찬돌이. 지난해 4월쯤 태어났고 그때 씌운 목줄을 몸집이 커진 지금까지 갈아주지 않아 목을 파고들고 있었다.

목줄로 피부가 괴사된 채 돌아다니던 찬돌이는 좀처럼 잡히지 않아 보호자 가족의 애를 태웠다. 동물구조119 제공


사정을 들은 박씨는 먼저 파주시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장 구조대를 보내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대신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가 구조에 나서기로 했다. 발견 사흘 만에 찬돌이의 구조가 시작됐다.

포획틀 배회만 15번… 17시간 대치

1월 23일 오후 2시. 25㎏이 넘는 찬돌이를 잡기 위해 대형 포획틀이 설치됐다. 보호자였던 류씨 부부에 따르면 찬돌이는 돌아다니다 저녁 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온다고 했다. 동물구조119 활동가들은 찬돌이를 포획틀 안으로 유인하기 위해 고기를 굽고, 경계심이 많은 점을 감안해 포획틀 바깥 쪽부터 안쪽까지 고기를 한 점씩 놨다.

뜰망으로 포획한 찬돌이는 막상 잡히자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동물구조119 유튜브 캡처


눈치가 빠른 찬돌이는 좀처럼 포획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밤새 포획틀 근처를 맴돌기만 15차례. 다음 날 오전 7시가 돼서야 찬돌이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포획틀 안으로 들어가 고기를 한 점씩 먹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뒷다리를 뒤로 뻗고 몸의 앞부분을 길게 늘어뜨린 채였다. 겁이 났지만 고기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찬돌이는 점점 포획틀 안쪽으로 들어갔고 결국 포획문이 닫히면서 구조됐다. 놀란 찬돌이는 목의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획틀 안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임 대표는 "찬돌이가 심하게 저항하면서 포획틀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며 "그래도 뜰망을 이용해 막상 포획하니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얌전했다"고 설명했다.

수술 이후 건강을 회복 중인 찬돌이. 동물구조119 제공


목줄 빼고 한 달 만에 집으로

구조 후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한 찬돌이는 심각했다. 겨울이었으니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 여름이었으면 목줄이 파고든 부분에 구더기가 끓고 염증이 생겨 죽었을 수 있다는 게 수의사의 설명이었다. 반년 이상 찬돌이의 숨통을 조였던 목줄을 풀어냈지만 곧바로 퇴원할 수 없었다. 목의 상태도 회복해야 했지만 오랜 바깥 생활 탓에 심장사상충(심폐질환을 일으키는 기생충)에 감염된 게 확인되면서 치료가 필요했다.

류씨가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찬돌이에게 새 집을 보여주고 있다. 동물구조119 제공


한 달간의 치료와 중성화수술을 마치고 지난달 25일 찬돌이는 옛집으로 돌아왔다. 류씨 부부, 동물구조119활동가,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가로 2.4m·세로 4m 크기의 새 집을 짓고 찬돌이를 환영했다. 찬돌이는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관심에 어리둥절하고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집 안으로 몸을 뉘었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찬돌이. 동물구조119 제공


옆 동네 보냈는데 1주일 만에 돌아온 찬돌이

찬돌이는 보호자가 있음에도 왜 떠돌이개가 됐을까. 류씨 부부는 지난해 5월쯤 태어난 지 1개월 된 찬돌이를 100m가량 떨어진 옆 동네로 보냈다. 하지만 1주일 정도 지난 뒤 엄마가 보고 싶었던 찬돌이는 목줄을 끊고 다시 류씨 집을 찾아왔고, 어미 곁에서 맴돌았다. 류씨는 "그 사이 찬돌이 몸집이 쑥쑥 컸다"며 "목줄을 바꿔주고 싶었지만 날쌘 찬돌이는 아무리 해도 잡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목줄까지 끊고 왔건만 찬돌이는 어미개와는 함께 지내지 못했다. 류씨 부부가 대형견인 어미개와 찬돌이 두 마리 모두를 돌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씨는 이제 찬돌이만큼은 끝까지 돌보겠다고 했다. "찬돌이가 가족을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살려낸 만큼 책임을 다해 끝까지 돌보겠다."


1m 목줄이 세상 전부인 시골 마당개

동물구조119가 찬돌이의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방치된 채 살아가고 있는 마당개들의 복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해주기 위해서다. 마당에서 목줄에 묶어 기르거나 목줄 없이 풀어놔 사라져도 보호자가 찾지 않는 개들은 추위와 더위, 질병에 취약한 채 살아가야 한다. 특히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떠돌이개와 마당개, 나아가 유기견 개체 수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동물구조119는 30마리의 시골개를 선정, 접종은 물론 중성화수술과 야외견사를 지어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임영기 대표는 "반려동물 1,500만 시대라고 하지만 시골에서 사는 개들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며 "이를 알리고 지자체와 주민, 동물단체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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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 구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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