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그램 中
서현석의 'X(무심한 연극)' 4월 16일까지
VR장비 쓰고 현실과 가상의 괴리 체험
까만 의자가 하나 있다. 흰색 커다란 방 한 구석에 놓인 의자다. 어떤 여정이 펼쳐질까. 홀로 덩그러니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기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엄습했다. 몇 분 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가상현실(VR) 장비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는 눈 앞에 놓인 침대에 천천히 노곤한 몸을 뉘었다. 미지의 세계로 입장할 준비가 끝이 났다.
이곳은 다름 아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5전시실. 지난 16일 오후 이 곳에선 다원예술 전시 ‘멀티버스(Multiverseㆍ다중우주)’의 일환인 서현석 작가의 가상현실 퍼포먼스 ‘X(무심한 연극)’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술관은 더 이상 벽에 걸린 그림이나 바닥에 설치된 조각을 감상하는 곳만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다원예술 프로그램은 2017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장르를 확장하고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펼쳐지는 장이다. 예컨대 작년의 경우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란 제목으로 개를 위한 전시를 열고 개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했다. 올해엔 가상현실, 인공지능, 드론, 자율주행과 같은 최신 기술을 활용한 예술 작품을 통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서현석 작가가 연출한 ‘X(무심한 연극)’는 그 중에서도 관람객이 VR장비를 착용하고 가상공간 속 빈 전시실을 이동하며 체험하는 형태로 꾸며진 프로그램이다. 40분 간 이어지는데, 영상 속 허상과 실제 공간을 오가도록 구성돼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
제목의 ‘X’는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에서 왔다. 칸트는 인간의 감각이 이를 수 없는 대상을 말할 때 X를 사용했다. 괄호 속 제목인 ‘무심한 연극’은 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의 말에서 따왔다. 슈뢰딩거는 이런 말을 한다. “당신 눈이 보는 이 모든 것은 당신 이전부터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있어 왔다. 잠시 후면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숲, 바위, 하늘은 당신 이후에도 변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여전히 거기 있을 것이다. 당신을 그렇게 별안간 무로부터 불러내어 잠시나마 ‘무심한 이 연극’을 감상하도록 한 것은 무엇인가?”
전시 기획자인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이 작업은 실체에 관한 이야기”라며 “VR 속 화면이 환영인 걸 알면서도 그것이 실체와 너무 가깝다고 느낄 때, 실재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사전 예약을 통해 한 사람씩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는 4월 1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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