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은 왜 소설로만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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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왜 소설로만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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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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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오영환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2030 의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4·7 재·보선 참패와 관련한 2030 의원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아파트값 폭등과 코로나19 불황으로 출판 베스트셀러 1위를 주식투자 저서가 차지하기 2년 전, 그 자리에는 ‘90년대생이 온다’란 책이 있었다. 밀레니얼 세대의 한국적 특징을 소개한 저자 임홍택씨는 1982년생. 그 몇 해 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소설의 주인공 김지영의 생년과 똑같은데 ‘90년대생…’의 주요 독자 역시 임씨, 김씨 같은 30대 중후반이었다. 이제는 중간관리자가 된 이들이 자기 세대와 신입직원들의 차이를 상사에게 설명해 보려 많이 사봤다는 후문이다. 86세대 임원과 X세대 부장과 MZ세대 사원이 자기 세대 정체성을 장착한 채 다들 목소리를 내는 동안 조용히 침잠했던, 이름조차 없는 이 세대는 ‘중간’이지만 관리자도 된 마당에 목소리를 죽이고 주변 세대에 적응하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소설 속 김지영처럼.

“왜 국회의원 평균 나이가 점점 많아진다고 생각하세요?” 20대 국회 막바지, 정치 기획 시리즈물을 준비하던 후배가 했던 이 질문에 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한국인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보다는 국회의원 평균 나이가 더 빨리 늘었겠지. 잘 사는 사람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살 거니까.” 이어 나는 ‘가야 할 때’를 알아도 의석 차지하며 의원 평균 나이를 끌어올리는 이들의 노욕을 비난했고, 권력의 속성은 그런 거라 냉소했다.

임홍택과 김지영과 후배의 저 말이 갑자기 떠오른 건 지난주 보궐선거 투표에 기권하면서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선거 내내 상대 비난이나 하고 유치하게 맞받는 후보들 면면과 그들의 공약을 보면 누굴 찍든 내 인생에 역효과만 줄 것 같았고, 그럼 ‘주류 정치권에 메시지나 주게’ 소수정당 후보를 뽑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3번 이하’ 후보들의 나이, 이력, 공약을 보는데 임홍택과 김지영, 그러니까 내 또래 입장을 말하는 후보가 한 명도 없었다. 자기 세대 이름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많아지는 국회의원 평균 나이를 ‘권력 속성’이라 치부하는 냉소로 어찌 인생을 걸고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 있었겠나. 그러니 82년생 임홍택과 김지영의 고민은 베스트셀러로만 회자되고, 현실 변화는 없는 거다. ‘냉소를 가장한 무임승차의 값을 이렇게 치르는구나’ 싶었고, 다음 세대는 우리처럼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평론가 함돈균의 말처럼 ‘공정을 삼촌 세대, 아버지 세대에게 요구하고 항의해봤자 절대 저 세대는 권력을 지성적이거나 평화롭게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86세대 몰염치 탓은 그만두고, 자기 세대 정치인부터 키우자. 그 가공할 몰염치로 인구 대비 몇 십 배 목소리를 낸 덕에 내로남불(naeronambul)은 외국 독자도 다 아는 고유명사가 됐으니. 어느 계층이나 당사자가 아니면 체감할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하고, 그 문제는 대개 당사자가 의회에서 투표하거나, 선출직 공무원이 돼 정책을 뜯어고칠 때나 해결된다. 당장 20·30대 여당 초선 의원들이 ‘수위 조절’한 성명을 발표하고 ‘5적’으로 몰린 상황을 보라. 누구는 180석 압도적 지지의 혜택을 입은 이들이 배은망덕하다고 했지만, 이들이 5명이 아니라 50명이었으면 그런 막말은 감히 내뱉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여당이 선거에서 이렇게 참패하지 않았을지도, 그 전에 후보 공천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이윤주 정책사회부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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