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환자 김모(21)씨는 만원 지하철에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우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심호흡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려졌다. 이내 의식이 돌아왔지만 조금 있다가 다시 의식을 잃고 넘어져 응급실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뇌와 심장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퇴원했다. 하지만 이후 오래 서 있거나 인파가 북적대는 밀폐된 공간에 가면 쓰러지기 전 느꼈던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일시적으로 의식이 소실되는 실신은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비교적 흔한 증상이다. 뇌로 가는 혈액순환이 갑자기 감소하면서 생긴다. 부정맥ㆍ판막 질환ㆍ뇌혈관 협착ㆍ기립성 저혈압 등 원인이 다양하다. 이 가운데 전체 실신 환자의 40% 이상, 실신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66%는 자율신경계 이상 반응으로 인한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이 원인이었다.
박성욱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내과 교수에게 미주신경성 실신의 원인과 한방 치료법을 알아봤다.
◇실신 직전 어지럼증ㆍ식은땀ㆍ두근거림 등 전조 증상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은 극도로 긴장하거나 심한 정신ㆍ육체적 스트레스로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흥분해 발생한다. 지나친 긴장으로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말초 혈관이 수축하고 심장 박동이 강해지면서 빨라진다.
이로 인해 혈관 운동을 조절하는 뇌 중추인 연수 부위를 자극하고, 이를 조절하기 위해 반대로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말초 혈관을 확장시키고 심장 박동을 느리게 만드는 반응이 일어난다. 이때 조절 반응이 과도해지면 혈압이 지나치게 떨어지고, 뇌 혈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실신하게 된다.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은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 대부분 전조 증상이 있다. 전신 무력감, 하품, 식은땀, 상복부 불쾌감, 메슥거림, 어지럼증, 시야 흐려짐, 두근거림, 두통 등이다.
대개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수 초에서 수 분 전에 발생한다. 이때 환자 스스로 곧바로 앉거나 눕지 않으면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하지만 뇌 혈류가 회복되면서 대부분 수 초 내 의식이 저절로 돌아온다.
박성욱 교수는 “실신으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치는 등 외상을 입을 수 있고, 실신이 재발할 때가 많다”며 “자율신경계 기능을 회복시키는 전신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인은 원활하지 않은 기순환…침ㆍ뜸 치료 도움
한의학에선 실신을 궐증(厥證)이라 부른다. 온몸에 발생한 여러 가지 변화 때문에 기혈(氣血)의 운행이 원활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는 의미다.
기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울결’이 원인이 된 경우 엉키고 울체된 기운을 흩어주고 풀어주는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이나 시호소간산(柴胡疎肝散) 등이 활용된다. 특히 시호소간산은 베타차단제를 사용한 대조군과의 비교 임상 시험에서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의 재발을 억제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기운이 지나치게 약해져 실신했다면 기운을 보충하고 상승하도록 도와주는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과 승양익기탕(升陽益氣湯)이 처방된다.
침 치료와 뜸 치료도 자율신경계 기능을 회복하고 기 순환을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족삼리(足三里)혈과 내관(內關)혈은 기초 연구와 임상 시험에서 자율신경계 기능을 정상화하고 혈관 운동성을 개선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박 교수는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은 외상의 위험과 재발로 인해 고통이 매우 크다”며 “한방 치료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전조 증상 나타나면 쪼그려 앉거나 누워야
일상생활을 하다가 혈관미주신경성 실신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거나, 다리를 올리고 누워서 의식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앉거나 누워서 전조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바로 일어나면 실신할 수 있으므로 10분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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