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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히 드러난 미국의 분열상

입력
2021.03.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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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모리대에서 아시아계 지자들을 면담한 뒤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을 규탄했다. 왼쪽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애틀랜타=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모리대에서 아시아계 지자들을 면담한 뒤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을 규탄했다. 왼쪽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애틀랜타=AP 연합뉴스


미국 사회 곳곳의 인종주의가 더욱 노골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한인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6명이 숨진 끔찍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트럼피즘’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미중 간 패권 대립이 무르익는 한복판에서 터졌다.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수사상황 발표부터 두 정치 성향의 충돌을 감지할 수 있다. 수사 주체인 두 지역의 정치적 배경부터가 정반대다.

한인 여성 4명이 숨진 애틀랜타 스파 두 곳에 대한 수사는 풀턴 카운티가 맡고 있고, 그 북쪽으로 64km 떨어진 중국계 마사지숍에 대해선 체로키 카운티가 담당하고 있다. 최초 브리핑에서 용의자를 두둔하듯 “그(총격을 저지른) 날은 그에게 정말 나쁜 날이었다”고 말한 쪽이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국이다. 이 곳은 인구의 80%가량이 백인이다. 지난해 11월 대선 때 트럼프 몰표가 쏟아진 지역이다. 체로키 카운티 당국은 “인종적 동기가 아니었다”는 용의자 주장을 여과없이 전달해 사건을 개인적인 성충동 문제로 가리려 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반면 애틀랜타가 속한 풀턴 카운티는 이와 다른 입장을 처음부터 유지했다. 이 지역은 대선 때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무려 46%포인트 더 득표한 곳이다. ‘공화당 텃밭’이던 조지아주에서 바이든이 역전하는 데 가장 공이 큰 지역이다. 특히 애틀랜타는 지난해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집중됐던 도시다. 흑인 여성인 애틀랜타 시장은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믿는다고 못박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 내 보수적 색채가 강한 인터넷 매체들은 문제를 정치화시키는 것은 난센스라는 분위기다. 성 이상자의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총격 사건 사흘 만인 19일(현지시간) 애틀랜타로 건너가 아시아계 리더들과 면담하고 폭력규탄 연설을 한 풍경도 못마땅하다는 뉘앙스다. 이들 매체는 민주당 측이 소수인종집단을 견고한 지지세력으로 강화시키려 한다고 냉소적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9일(현지시간) 뉴욕시 맨해튼 지역에 있는 트럼프 타워를 나와 SUV 차량에 오르면서 시민들에게 오른손을 치켜들며 인사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9일(현지시간) 뉴욕시 맨해튼 지역에 있는 트럼프 타워를 나와 SUV 차량에 오르면서 시민들에게 오른손을 치켜들며 인사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인종갈등 문제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심해지는 경제적 양극화, 진영논리와 편가르기,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치인, 찬반이 갈리는 이민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덩어리다. 증오범죄는 타인에 대한 편견이 범행동기가 되는 상황을 말한다.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 성별, 국적, 성 정체성 등이 근거가 된다. 미국은 탄생부터 백인우월주의의 ‘원죄’를 갖고 있는 나라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천부인권을 외쳤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흑인 노예제를 존속시킨 사람들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종갈등은 물론, 트럼피즘과 민주당의 충돌도 더 격렬해질 것이다. 공화당 성향과 민주당 측의 총기규제 대결도 재점화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 등장으로 미국 최대 로비단체로 불리는 전미총기협회(NRA)의 기세가 다소 밀리는 상황이다. 한인 시민권자도 혐오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로는 비극적인 참사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인종정치의 망령을 극복하고 분열을 넘어서려는 바이든 정부가 뿌리깊은 백인우월주의, 다인종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까. 바이든은 세계민주주의 맹주국으로서 그 체제의 우수성을 증명해야 할 본싸움에 들어갔다. 여기서 이겨야 인권을 들이밀어 타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명분도 유지될 수 있다.




박석원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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