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몇 인치" 물어본 상사 신고하자?
퇴사 종용하고 표적 징계로 보복?
직장 괴롭힘 신고자 70%가 불이익 경험
"백한 법 위반...제대로 조사해야"
김은주(가명)씨는 2019년 7월 입사 이래 상사인 본부장의 성희롱에 줄곧 시달렸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를 걸거나 퇴근 후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기를 수차례. 매번 거절하다 마지못해 나간 저녁 자리에서 본부장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늘어 놓았다.
"허리가 몇 인치예요? 엄청 얇던데." "골반이 진짜 큰 거 같애. 골반 몇 인치예요?" "남자들한테 인기 많을 거 같은데, 왜 남자친구 없어요?"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이후에도 본부장은 지속적으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김씨가 계속 거절하자 신경질적인 태도로 대하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김씨가 2020년 4월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책임자인 이사와 가해자인 본부장은 오히려 그를 불러 퇴사를 종용했다. 반발하며 거부했더니 다른 부서로 강제 발령을 냈고, 김씨의 식대 내용을 조사하는 등 표적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그는 회사의 보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퇴사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하면서 신고자에 대한 보복 조치가 있을 경우 처벌하도록 했지만,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2월 22~29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26명)의 69.2%가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이익 유형은 '징계, 근무 조건의 악화'가 61.1%로 가장 많았다. 이어 '괴롭힘, 따돌림 등(33.3%)' '해고(5.6%)' 순이었다. 직장갑질119에 지난 1, 2월 두 달간 이메일로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건수는 86건이었는데, 이 중 신고를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는 제보는 26건(30.2%)에 달했다.
직장인 A씨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후에 본인이 원하지 않는 부서에 협의 없이 배치를 받았다. 신고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결론 났지만,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오히려 가해자를 포함한 직원들이 인사도 받지 않고 조롱하며 그를 따돌리고 있다. A씨는 회사에서 지급하는 선물도 주지 않고, 업무는 과도하게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B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사실에 대한 고발을 한 후, 이와 관련해 동료들과 사석에서 가해자인 선임을 뒷담화해 회사 기강을 문란케 했다는 게 해고 사유였다. B씨는 임원에게 불려가 '회사로서는 너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 임원이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유일한 처벌 규정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셈이다.
김한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사용자들이 여전히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를 사업장에서 내보내거나 피해자에게 징계를 하는 등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명백한 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에서도 제대로 된 조사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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