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20년 만의 복수”... 중국이 美와 회담 결과에 열광하는 3가지 이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20년 만의 복수”... 중국이 美와 회담 결과에 열광하는 3가지 이유

입력
2021.03.21 17:00
8면
0 0

中, 알래스카회담에 "성공적" 후한 평가
1901년 '신축조약' 굴욕 때와는 상반돼?
①대등하게 맞섰다, "미국의 완패" 주장
②‘전략적 오판’ 美 환상 깨뜨렸다 강조
③판을 깨지 않았다...향후 협상 자신감

미국 측 토니 블링컨(오른쪽 두 번째)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맨 오른쪽)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 양제츠(왼쪽 두 번째)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맨 왼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8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고위급회담을 하고 있다. 앵커리지=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측 토니 블링컨(오른쪽 두 번째)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맨 오른쪽)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 양제츠(왼쪽 두 번째)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맨 왼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8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고위급회담을 하고 있다. 앵커리지=로이터 연합뉴스


양보도, 타협도, 내놓을 만한 성과도 없었다. 18~19일(현지시간)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회담은 서로 얼굴만 붉히다 끝났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상견례임에도 묵은 갈등과 반감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하지만 중국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성공적인 첫 승부”라며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회담의 형식과 내용, 향후 대미 관계 등 3가지 면에서 중국의 노림수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①美와 대등하게 맞섰다

미중 고위급회담 직후 중국 SNS에 올라온 두 장의 사진. 의화단운동을 진압한 열강 11개국이 1901년 청나라를 상대로 '신축조약'을 맺고 있는데(위 사진) "모든 중국인이 백은 한 냥씩 배상했다"고 적었다. 중국 대표단은 열강 대표단에 둘러싸여 오른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120년이 지난 2021년 신축년의 상황이 담긴 아래 사진에는 미국과 1 대 1로 대등하게 맞서는 회담 장면과 함께 "중국인과 말할 때는 당신의 태도를 주의하라"고 적혀 있다. 웨이보 캡처

미중 고위급회담 직후 중국 SNS에 올라온 두 장의 사진. 의화단운동을 진압한 열강 11개국이 1901년 청나라를 상대로 '신축조약'을 맺고 있는데(위 사진) "모든 중국인이 백은 한 냥씩 배상했다"고 적었다. 중국 대표단은 열강 대표단에 둘러싸여 오른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120년이 지난 2021년 신축년의 상황이 담긴 아래 사진에는 미국과 1 대 1로 대등하게 맞서는 회담 장면과 함께 "중국인과 말할 때는 당신의 태도를 주의하라"고 적혀 있다. 웨이보 캡처


회담 직후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대조적인 장면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이 퍼졌다. 1901년 청나라가 수세에 몰려 미국을 비롯한 열강 11개국과 ‘신축(辛丑)조약’을 체결할 당시와 2021년 알래스카 회담장의 모습이다. 120년 전 중국은 제국주의 침탈에 맞선 의화단운동 진압 대가로 은 4억5,000만 냥을 지불했다. 이에 중국 대표단이 열강에 둘러싸인 사진에는 “모든 중국인이 백은(白銀) 한 냥씩 배상했다”는 치욕의 역사가 적혀있다. 반면 미국과 대등한 자세로 양자회담에 나선 올해 사진에는 “중국인과 말할 때는 당신의 태도를 주의하라”고 새겨놓았다.

미중 고위급회담 직후 중국 SNS에 등장한 애니메이션. '그 해, 그 토끼, 그 일들'이라는 제목의 시리즈에 나오는 장면인데 과거 영상을 다시 끄집어냈다. 중국 대표단은 토끼, 미국 대표단은 독수리에 비유해 회담장에서 서류를 집어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맞붙고 있는 모습을 희화화했다. 웨이보 캡처

미중 고위급회담 직후 중국 SNS에 등장한 애니메이션. '그 해, 그 토끼, 그 일들'이라는 제목의 시리즈에 나오는 장면인데 과거 영상을 다시 끄집어냈다. 중국 대표단은 토끼, 미국 대표단은 독수리에 비유해 회담장에서 서류를 집어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맞붙고 있는 모습을 희화화했다. 웨이보 캡처


중국의 자존심을 고양하는 애니메이션도 등장했다. 중국을 토끼, 미국을 독수리에 비유해 회담장에서 침을 튀기며 설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리하이둥(李海東) 중국 외교학원 교수는 21일 “과거 중국은 미국에 호의적인 인상을 주려 온건하게 대했지만 이제는 다르다”면서 “중국의 힘과 위상을 바탕으로 조정된 외교에 미국은 적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관저에서 자신을 예방한 토니 블링컨(오른쪽)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왼쪽) 국방장관을 영접하고 있다. 스가 총리가 오스틴 장관에게 허리를 숙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를 두고 중국은 "일본의 굴욕"이라며 억지주장을 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관저에서 자신을 예방한 토니 블링컨(오른쪽)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왼쪽) 국방장관을 영접하고 있다. 스가 총리가 오스틴 장관에게 허리를 숙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를 두고 중국은 "일본의 굴욕"이라며 억지주장을 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은 애먼 일본을 끌어들여 억지주장도 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16일 관저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을 영접할 당시 허리를 숙인 순간이 잡힌 사진을 마치 굴욕인 양 깎아 내렸다. 이와 달리 중국 대표단은 “미국을 향해 할 말 다하며 큰소리를 쳤다”고 강조했다. 션이(沈逸) 푸단대 교수는 “이번 회담은 미국의 완패”라며 “중국은 면전에서 날카롭게 반격을 가한 반면, 일본은 최고지도자가 미 장관에게 상급자 대하듯 고개를 숙였다”고 평가했다.

②‘전략적 오판’ 위험 피했다

양제츠(오른쪽)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9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마친 후 CCTV 등 중국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앵커리지=신화 뉴시스

양제츠(오른쪽)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9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마친 후 CCTV 등 중국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앵커리지=신화 뉴시스


중국이 얻은 더 큰 소득은 회담 발언이다. 중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의 공격에 방어만 할 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 끌려 다녔다는 ‘피해의식’이 적지 않다. 미국이 언제든 중국을 뭉갤 수 있다는 이른바 ‘전략적 오판’이다. 환구시보는 “미국이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 가져온 오해는 자신들의 힘과 냉전시절 경험으로 중국을 봉쇄하고 억누를 수 있다고 믿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응어리’를 말끔하게 털어냈다. 중국 대표단은 ‘주권’, ‘핵심 이익’, ‘중화민족의 존엄’ 등 미국이 넘어선 안 될 ‘레드라인’을 재차 강조하며 존재감을 부쩍 과시했다. 그 결과 “중국을 무너뜨리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미국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시켰다는 것이 중국 내 대체적인 평가다. 어차피 미국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는 만큼, 미국이 오판에서 벗어나 중국과 협력의 접점을 넓히는 ‘전략적 합리성’을 갖추도록 제대로 일침을 놓았다는 것이다. 중국 대표단을 이끈 양제츠(楊潔?)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은 회담 후 인터뷰에서 “미국과 긴 시간 전략적 소통을 하면서 각자의 대내외 정책과 양국 관계에 대해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③판을 깨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9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중국과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은 전날부터 이틀간 세 차례 고위급 담판을 벌였지만 공동발표문을 내지 못한 채 회담을 끝냈다. 앵커리지=로이터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9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중국과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은 전날부터 이틀간 세 차례 고위급 담판을 벌였지만 공동발표문을 내지 못한 채 회담을 끝냈다. 앵커리지=로이터 연합뉴스


이처럼 치열하게 맞서면서도 미중 양국 모두 향후 대화 여지를 남겨뒀다. 충돌하고 나면 등을 돌렸던 트럼프 정부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중국 상무부 부부장과 국제경제교류센터 비서장을 지낸 웨이젠궈(魏建國)는 “협상의 궁극적 기술은 싸우되 판을 깨지 않는 것”이라며 “양국이 극명하게 이견을 드러냈지만 서로 진정성을 갖추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봉쇄망이 느슨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가외 소득도 챙겼다. 미국의 재촉에 아랑곳없이 한국과 인도는 각각 미국과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이라는 표현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주변국이 미국에 가세해 중국을 틀어막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셈이다. 미국의 대중 지렛대가 허술할수록 중국의 대미 협상력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최대 우군 러시아도 중국에 한층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왕이(王毅) 외교부장 초청으로 22~23일 베이징을 방문한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