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넘어진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작품 쓰는 일입니다.”
지난 2일 신경숙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2015년 표절 논란으로 자숙하던 작가가 8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과거의 허물과 불찰을 무겁게 등에 지고 새 작품을 써 나가겠다”며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밝혔다. 2019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중편소설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주 2회씩 장편소설을 연재하면서 기지개를 켜던 신 작가는 이로써 완전한 복귀를 알렸다.
논란의 작가들이 돌아왔다. 신경숙 작가는 아버지를 앞세운 장편소설로, 이인화(본명 류철균) 작가는 훈민정음을 소재로 한 SF스릴러를 들고 나란히 독자를 찾았다. 한때 한국문학의 여왕과 천재 소설가로 꼽혔지만 각각 표절 논란과 국정농단 사건으로 일순간 추락했던 두 작가는, 명예와 오욕을 모두 가져다 준 문학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 작가는 정조 독살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이 백만 부 이상 팔리며 밀리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17년 최서원(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직에서도 해임된 뒤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그는 최근 장편소설 ‘2061년’을 냈다. 훈민정음을 소재로 한 SF스릴러인 이 소설은 작가가 직접 차린 ‘스토리프렌즈’에서 출간됐다. 집필, 교정, 편집, 출간까지 이 작가가 도맡은 1인 출판사다. 이 작가는 출간을 기념해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모두가 내 탓”이라면서도 “글을 쓰지 못했다면 무너졌을 것이다. 문학이 적어도 개인은 구원할 수 있더라. 그게 설령 현실 도피여도”라는 소회를 밝혔다.
논란의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작가들은 구체적인 해명 대신 작품으로 십자가를 지겠노라 말한다. 박범신 작가는 2016년 방송작가, 팬, 출판편집자 등과 가진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내용의 성추행 의혹에 휩싸였다. 이후 피해자로 지목된 여성이 “성추행이 아니었다”며 항변하기도 했으나 박 작가는 자신의 SNS에 “내 일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께 사과하고 싶다”는 글을 올리고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
2016년 출간예정이었던 박 작가의 장편소설 ‘유리’는 해당 논란으로 2년 뒤인 2018년에야 정식 출간됐다. 당시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 작가는 “감옥 가라면 갈 수 있지만 펜 놓으라면 살 동력을 잃겠더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책 내고 인터뷰하는 게, 명예를 회복하거나 책 팔아 돈 벌려는 게 아니다. 작가로 살아야 되니까. 글 쓸 동력을 지키고 싶은 간절함밖에 안 남았다”고 덧붙였다. 박 작가는 지난달 시집 ‘구시렁구시렁 일흔’을 냈다. 성추행 의혹 이후 사실상 처음 쓴 작품이다.
공식적으로 신작을 내진 않더라도 익숙한 지면을 통해 근황을 에둘러 알리는 것은 작가들의 특권이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었지만 2018년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성폭력 사실이 드러난 고은 시인은 지난 1월 15일 문예지 실천문학의 40주년 기념 특별호에 글을 실었다. 실천문학 창간 당사자 자격으로 쓴 해당 글에서 고 시인은 실천문학의 탄생 배경과 의의 등에 대해 적었으나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논란을 일으킨 작가들의 복귀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부터, 그렇다고 작가에게 펜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입장도 있다. 이와는 별개로 한때 널리 사랑받았던 이들의 복귀작에는 자연히 독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 작가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출간 첫 주에만 1만5,000권이 팔렸다. 출판사 관계자는 “서점에서 추가 주문이 이어져 6쇄를 찍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작가의 ‘2061년’ 역시 3쇄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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