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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에겐 목화솜 이불이 추억이었다

입력
2021.03.19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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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건축가 훈데르트바서는 집을 피부와 옷 다음으로 우리를 보호해주는 ‘제3의 피부’라고 표현했다. 이렇듯 집은 인간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끝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과거 집 정리, 집 꾸미기는 주로 여성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팬데믹 시대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간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불필요한 물건이 가득한, 정돈되지 않은 공간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잦다. 심지어는 예민해지고, 무기력해져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공간은 업무능률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며, 어지러진 공간은 에너지를 빼앗아가기도 한다. 주변 환경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비워낼 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비로소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버리는 게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물건에 추억과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70대 부모님 댁 정리 의뢰를 받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혼수품인 목화솜 이불부터 빛바랜 효부상 등 삶의 발자취를 대변해주는 물건들이 집안에 가득했다. 옷장 문조차 잘 열리지 않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하다고 하셨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린다는 일은 참 쉽지 않았다. 자녀들이 으름장을 내기도 하고 큰소리도 오갔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정말 사소한 행동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바로 부모님이 살아온 삶을 인정해주고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이다. 할머님께서 자녀들이 당신이 살아온 삶을 모를까 봐 삶을 대변하는 물건에 애착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알아주는 그 순간 마음을 비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물건을 갖고 있는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물건이 자신의 삶을 대변하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결핍을 채우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물건이 갖는 의미는 모두 다르다.

이제 못 버리는 이유가 아닌 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물건 버리기가 어렵다면 물건을 사진으로 남겨보자. 우리는 추억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고 내 주변에 처리하기 애매한 물건은 오히려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두 번째, 같은 기능을 갖고 있는 물건은 개수를 줄여보자. 주방에서 밥주걱을 종류별로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식사 준비할 때 굳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공간에 의미를 재정의하고 그 공간에서 내 삶의 질을 높여주는 물건으로 채워보자. 친정 엄마가 해주신 목화솜 이불을 버린다고 엄마와의 추억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물건에 의미를 두기보다 공간의 의미를 생각하고, 과거에 갇히기보다는 현재의 내 삶에 충실해야 한다.

좋아하는 물건마다 애착이 가고 나름의 이유들로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공간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물건이 주인이 돼버리기 전에 우리는 공간의 의미를 생각하고 물건을 선택해야 한다.

쾌적하고 편안한 공간을 원한다면 그 공간의 의미에 맞게 주로 사용하는 물건들로 채워보자. 물건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내가 요즘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도 잊고 있던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주 정리컨설턴트·하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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