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정상간 설전으로 번진 나발니 사태
푸틴, 생방송 토론도 제안... 美 대사 초치
백악관 "발언 철회 안해", 갈등 지속 예고
‘인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양국 정상간 설전으로 번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로 지칭하자, 푸틴 대통령도 “당신(바이든)도 그렇게 불릴 수 있다”며 곧바로 응수했다. 푸틴 대통령은 구체적 날짜를 못박아 ‘맞장 토론’을 제안했다. 트럼프 시대와 확연히 다른 미ㆍ러의 냉각기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ABC방송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자세한 설명은 붙이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독극물 테러 시도를 주도했다는 판단에 근거한 답변으로 보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관련 징벌 조치로 이미 러시아 고위 관리 및 정부기관, 유관 기업체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제재를 내렸고 18일부터 발효됐다.
푸틴 대통령은 당연히 발끈했다. 그는 이날 크림지역 사회활동가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남을 그렇게 부르면 자신도 그렇게 불리는 법”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살인자 발언을 비판했다. 또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투하 등 미국의 과거 인권 침해 사례를 예로 들며 미국은 인권을 들먹일 자격이 없다는 점을 에둘러 꼬집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바이든의 발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닭의 말'”이라며 보다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푸틴은 이날 자국 TV방송과 인터뷰에서 “바이든에게 토론을 계속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면서 ‘온라인 생방송’을 조건으로 19일이나 22일쯤 대화하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 양국 관계와 지역분쟁 해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 여러 의제 역시 거론했다. 러시아는 이와 별도로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20일 소환하는 추가 조치도 취했다. 대사관 측은 “미러 관계 위기는 미국의 의도적 정책 결과 때문”이라며 안토노프 대사가 양국 관계 협의를 위해 귀국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잇단 강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더해 16일 공개된 미 국가정보국(DNI) 보고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DNI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공작을 시도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을 살인자로 부른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 대통령은 직접적 질문에 직접적 답을 한 것”이라며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인권과 안보를 고리로 한 미국의 거듭된 공세에 러시아도 강대강으로 맞받아치면서 양국은 상당 기간 접점 없는 대치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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