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투약 속도전…개발 중인 치료제는 울상
일부 제약사, 요건도 못 갖추고 '우리도 개발한다'
주가 부양 막으려면 검증된 기관이 발표해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제약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치료제는 감염 이후에 비로소 효험을 발휘하는데, 백신 투약 인구가 늘고 그에 따라 감염위험도 낮아져 치료제의 시장성은 그만큼 줄고 있어서다.
안 그래도 힘든 임상 참여자 확보는 백신이 확산될수록 더 어려워질 게 자명한 가운데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다고 앞다퉈 요란하게 발표부터 했던 일부 제약사들의 속보이는 행태에 뒷말도 나오고 있다.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로부터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승인을 받은 제약사는 총 14곳이다. 이 가운데 임상 3상 또는 조건부 2상 승인을 받은 곳은 4곳에 불과하고, 3곳은 여전히 1상(경증 및 중증 코로나19 환자 대상 유효성 평가 항목 기준)을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무섭게 확산하는 코로나19 위세와 변이바이러스 등장을 감안하면 국민이 느끼는 임상 속도는 더디다. 그러나 제약사들은 통상적인 신약개발 과정과 비교할 때 매우 빠른 속도라고 설명한다. 임상시험은 유효성과 안전성뿐 아니라 윤리 관련 내규를 철저히 지켜야 하기에 무작정 서둘러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산 2호 코로나 치료제로 기대를 모았던 종근당의 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도 지난 18일 식약처로부터 조건부 허가를 받지 못했다.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추가 임상이 필요하다는 게 식약처의 판단이다.
유례 없이 빠른 임상, 백신 등장에 시장성 ‘글쎄’
문제는 치료제의 시장성이다. 치료제 수요는 감염 환자 수에 비례하는데, 국내 코로나19 백신 투약이 본격화하면 감염 환자 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임상 과정에서 개발 중인 신약의 시장성 계산은 필수”라면서 “외부에 공개는 못하지만 내부적으로 (임상을) 홀딩한 곳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감염 속도가 워낙 빨라 개발이 숨가쁘게 진행된 데다 다른 의약품 임상시험과 달리 환자 모집부터 난관이었다. 국내 최초로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주' 조건부 2상 허가를 받은 셀트리온도 임상 2상 당시 참여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식약처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의약품 관리·규제 기관 소재지뿐 아니라 루마니아와 스페인에서도 환자를 수소문해 겨우 327명을 끌어모았을 정도다.
정부는 '예방'과 '집단면역'을 목표로 백신 접종을 확대할 방침이라 향후 임상 참여자 모집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코로나 환자 자체가 줄어들면 치료제 개발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다만 아직 보고되지 않은 백신 부작용 등 변수도 지켜봐야 하는 만큼 치료제의 효용이 모두 사라질 것으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도 코로나 치료제 개발” 침소봉대 경계해야
업계에서는 임상 의지가 없는 제약사의 침소봉대식 발표가 주식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임상과정을 모를 리 없는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임상 시작부터 언론 노출에 열을 올린 결과 과도한 주가 부양으로 연결됐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승인을 받은 한 제약사 관계자는 “지난한 임상과정을 속속들이 아는 제약사가 그런 과정을 일일이 중계방송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통상 5~10년 걸리는 임상시장에서 여러 회사가 앞다퉈 임상을 신청하고 승인 받는 지금의 행태가 결코 정상적이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수십 곳이 신약 개발 임상을 식약처에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승인을 받은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도 일부 제약사들이 주가 부양을 노린 꼼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식약처는 임상이 승인된 제약사만 공개할 뿐 임상을 신청한 제약사를 집계 및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시험 승인 요청을 한 제약사 중에는 신청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해 신청을 자진 취하하거나 반려되는 경우가 많은데 반려되도 곧바로 재신청을 하곤 한다”면서 “임상 신청 제약사를 수치화하면 중복되거나 (의미 있는 임상시험 신청 건수가 부풀려져) 왜곡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코로나 임상 신청’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총 554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식약처가 임상 승인 또는 조건부 허가를 했다는 내용도 있지만, 상당수는 임상 신청이나 긴급사용승인 신청 등 시작 단계를 다룬 보도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약사가 스스로 임상 신청 사실을 공표할 게 아니라 식약처나 의학 전문가 등 검증된 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발표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