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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왕국은 부활할 것인가

입력
2021.03.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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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20-2021 여자프로농구 챔피언을 거머쥔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선수들. WKBL 제공

2020-2021 여자프로농구 챔피언을 거머쥔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선수들. WKBL 제공


고(故) 이건희 회장 생전에 삼성이 마음먹으면 안 될 일이 없었다. 스포츠에서도 '삼성 왕조'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룹의 초일류주의와 궤를 같이한 삼성 스포츠단은 종목 불문하고 오직 '더 강한 팀'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돈으로 우승을 산다'는 비아냥거림도 감수하면서 말이다.

추락은 한 순간이었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2015년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9위-9위-6위-8위-8위의 들러리로 전락했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 블루밍스는 지난 2년간 강등 위기까지 몰렸다. 남자농구 삼성 썬더스는 2010년 이후 세 번이나 리그 꼴찌를 했다. 한때 77연승의 신화를 쓴 남자배구 삼성화재 블루팡스도 언제부턴가 순위표 밑에서 찾아보는 게 빨라졌고, 올 시즌엔 5승 26패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창단 첫 최하위의 굴욕을 맛봤다.

명가의 몰락엔 이유가 있다. 삼성은 2010년대 중반 스포츠단 운영에 획기적인 변화를 줬다. 스포츠단 운영 주체가 개별 기업에서 제일기획으로 일원화됐다. 각 구단이 수익을 창출해서 자생력을 찾으라는 거였다. 투자 의지 부족 자체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 스포츠단의 '복지'는 다른 팀 선수들에게 꿈 같은 얘기였다. 연봉보다 많은 보너스를 일당으로 받아가는 선수가 있었다는 야구단의 일화는 삼성의 남다른 '클래스'를 보여준다.

영광의 추억만 곱씹던 삼성에서 오랜만에 우승팀이 나왔다. 여자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정규리그에서 6개팀 중 4위에 그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1위 아산 우리은행을, 챔피언결정전에서 2위 청주 KB스타즈를 연파하고 '언더도그의 반란'을 일으켰다. 4대 스포츠에 걸쳐 5개 팀을 가진 삼성 스포츠단 소속팀의 리그 우승은 2014년 야구 이후 7년 만이다.

삼성은 여전히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다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해외 구단, 글로벌 스타, 메이저 대회로 눈을 돌리고 있다. 스포츠 산업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발을 뺀 국내스포츠에선 더는 뽑아낼 투자 대비 효과가 없다는 계산이 섰을 거다. 삼성생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 시즌 여자 프로농구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은 14억원이다. 삼성생명 연봉 총액은 11억4,000만 원으로 6개 팀 중 최저다.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스포츠 성장과 발전은 돈 없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올림픽 대표 효자종목 레슬링과 빙상도 삼성이 장기간 회장사를 맡아온 게 밀알이 됐다. 여자농구 전문가들은 "삼성생명의 우승은 선수들의 투지가 만든 결과다. 이번 결과만 믿고 투자를 게을리한다면 다음 시즌 성적은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삼성의 변화는 감지된다. 명가 재건의 기치를 내건 야구단은 지난겨울 두산 출신 자유계약선수(FA) 오재일을 50억 원의 거액에 사들였다. 삼성이 외부 FA를 영입한 건 3년 만이다. 이승엽 SBS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은 올 시즌 삼성을 2위권으로 전망하고 있다. 축구도 시즌 초반이지만 3위(3승 2무)로 선전 중이다. 무너진 1등의 자존심, '큰손'이었던 삼성의 로고가 다시 한국 스포츠의 전면에 등장할 날이 올까.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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