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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부부'는 왜 헌법재판소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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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부부'는 왜 헌법재판소에 갔을까

입력
2021.03.18 14:20
수정
2021.03.18 14: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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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부성 우선주의'에 반기, 이설아·장동현씨 부부
"정상가족 프레임에 균열 내려 헌법소원심판 청구"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회견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혼잎 기자

여기 '90년대생 부부'가 있다. 지난해 12월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이 새내기 부부는 그로부터 10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헌법 최후의 보루,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자녀는 아버지의 성(姓)과 본을 따른다'는 민법의 견고한 부성 우선주의에 한 방을 날리기 위해서다.

혼인신고 과정에서 알게 된 부당한 현실

"저희 이설아·장동현 부부는 오늘 견고한 정상 가족 프레임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부성 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합니다."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나란히 선 이설아(27)씨와 장동현(30)씨는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이씨는 "구시대적인 가족 제도에 종점이 찍힐 때가 왔다"며 "부성 우선주의는 부(父)와 남성을 기준으로 가족제도를 구성하는 부계 혈통주의의 핵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성평등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호적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008년 가족관계등록부가 도입됐지만,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하는 부성 우선주의는 여전히 굳건하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을 시기에 이들 부부는 어쩌다 이런 심판 청구에 나서게 됐을까. 독서 모임에서 만나 서로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반한 두 사람. 아이에게 엄마의 성씨를 주고 싶다는 이씨의 생각에 장씨는 흔쾌히 동의했다. 결혼식에 앞서 혼인신고부터 하러 간 부부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따라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주려면 혼인신고서에 이를 표기하고, 또 별도의 협의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 담당 공무원은 "나중에 바꾸려면 소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엄포를 놨다.

결국 협의서를 제출하고 구청을 나서면서도 이씨의 마음에는 의구심이 남았다. '부모가 동등하다면 아빠의 성을 따를 땐 필요하지 않은 협의서가 왜 엄마의 경우에는 필요할까.' 또 만약 혼인신고 때 협의를 하지 않았다면 태어날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줄 방법이 없는 걸까. 현재로서는 자녀 성을 변경하고 싶은 경우 멀쩡히 사는 부부가 이혼을 하고 재 혼인신고를 하면서 변경하거나, 가정법원에 신청을 하는 방법 뿐이다.


부성 우선주의에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연 이설아(왼쪽 두번째), 장동현(오른쪽 두번째)씨 부부가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혼잎 기자

부부는 이같은 민법이 △헌법 제36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 △제10조인격권을 침해하고, 자기결정권과 부모가 자녀의 성명을 지을 자유 등을 제약하고 있다고 봤다.

이들은 "민법은 원칙적으로 부의 성을 따르도록 하고, 별도의 협의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모의 성을 사용할 수 없도록 차별취급 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차별취급에 대한 정당한 입법목적을 찾을 수 없어 혼인과 가족생활의 양성평등을 명하는 헌법 제 36조 제1항에 위반된다"라고 덧붙였다.

"아빠 성이 왜 기본값?" 질문 던지는 부부들

서울 한 구청의 혼인신고서 양식. 자녀의 성, 본을 정할 때 모(母)를 따르게 할 경우 별도 표기를 하도록 돼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사회의 부성 우선주의를 향해 의문을 던지는 이들은 이씨 부부만은 아니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녀에게 엄마 성을 줄 수 있는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해주세요'라는 청원이 등장한 바 있다. 또 같은해 6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3.1%는 "자녀의 출생신고 시에 부모가 협의해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법의 부성 우선주의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젊은 부부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현실에 대항하기도 한다. 4년 전 결혼식을 올린 유은수(33)씨는 "출산 계획도 아직 없는데 혼인신고를 하며 누구의 성을 따를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다"라고 전했다. 유씨는 "여자의 성을 붙이려면 따로 절차를 밟아야 하니 '그냥'이 아니라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들었다"라고 전했다. 유씨 부부는 향후 아이를 가지면 이름 첫자로 엄마의 성을 넣어, 사실상 부모의 성을 같이 쓰게 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아예 혼인신고를 미루는 사례도 있다. 2019년 11월 결혼한 김주영(33·가명)씨도 "누구의 성을 물려줄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해 아이가 생길 때까지 혼인신고를 않기로 했다"라고 했다.

이씨 부부의 심판청구와 별도로 국회에서는 정춘숙,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법 제781조의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차별 없이 성·본 쓰기를 위한 민법 및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여성가족부도 부모가 협의해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방안 등이 담긴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다음달 국무회의에서 심의·확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가부 청소년가족정책실 관계자는 관련 방안에 대해 "법무부와 협의 중에 있다"면서 "부성 우선주의 폐지뿐 아니라 저출산 등 여러 가지 방안을 함께 놓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어 일정이 다소 미뤄졌다"라고 설명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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