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 수용소 실상 그린 영화 '모리타니안'
모헤마두 울드 슬라히(타하르 라임)는 아프리카 북서부 국가 모리타니아 출신이다. 학업 성취가 뛰어나 장학생으로 독일 유학을 갔고 이후 서구에서 생활했다. 가족의 자랑이던 그는 집안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사라진다. 6년 후 그의 소재가 밝혀진다.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돼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있었다.
슬라히의 행적은 의심을 살 만했다. 그는 독일에 살던 때 소련군의 만행을 듣고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이 설립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에서 전투 훈련을 받았다. 더군다나 그는 빈 라덴의 휴대폰으로 걸려 온 전화를 받기도 했다. 9·11 테러 용의자를 자신의 집에서 재워주기까지 했다. 몇몇 정황만으로도 그는 세계를 뒤흔든 테러범으로 여겨질 만했다. 슬라히는 완강히 혐의를 부인한다. 젊은 날 의협심에 알카에다에서 훈련을 받았을 뿐이고, 빈 라덴과는 아무 인연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인의 부탁으로 처음 본 사람에게 숙소를 제공해줬을 뿐이라고도 했다.
결백 여부와는 무관하게 슬라히의 운명은 결정된 듯해 보였다. 미국 정부는 2,977명이 숨진 사건에 대한 정의 구현이 필요했다. 심증만으로도 슬라히는 유죄였고, 단죄 받아 마땅했다. 악랄한 테러리스트에게 인권 운운은 값싼 동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연 그럴까.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가 슬라히 변호에 나선다. 무단 체포되고 기소와 재판 없이 수 년 동안 수용소에 수감된 슬라히의 경우는 법 원칙을 뒤흔든다는 판단에서였다. 미 국방부는 슬라히를 사형시키기 위해 완고하고 실력 있는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내세운다. 여론이나 증거에서 낸시와 슬라히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정말 슬라히는 죄가 없는 것일까. 무죄라면 그는 누명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법정 드라마의 모양새를 취하면서 관타나모 수용소의 일상을 상세히 보여준다. 슬라히가 수갑과 족쇄를 차고 가림막이 쳐진 곳으로 산책에 나서는 장면, 슬라히가 소음과 조명 등을 활용한 고문에 시달리는 모습 등을 자세히 묘사한다. 사람들 시선에서 빗겨나 있던 관타나모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을 그렇게 전한다.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슬라히의 저서 ‘관타나모 다이어리’가 밑그림이 됐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무렵에는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는 테러라는 광기가 부른 또 다른 광기에 대해 고발한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신념을 지키려 한 사람들의 언행이 울림을 준다. 알제리계 프랑스 배우 라힘과 포스터의 연기 앙상블이 도드라진다. 두 사람은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명단에 오르지는 못했다. 포스터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17일 개봉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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