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단아한 구슬픔' A 단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A 단조는 C 장조와 쌍둥이 관계다. 같은 엄마(조표)를 뒀다. A 단조의 조표에도 음자리표를 제외하면 아무런 표시가 없다. 조성 음악에서는 A 단조와 C 장조의 관계를 '관계조(Relative key)' 사이라고 부른다. 같은 뿌리에서 왔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사람도 쌍둥이의 개성이 각자 다른 것처럼.
같은 조표를 쓰는 단짝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인간에게는 양면적인 모습이 있다. 쾌활한 사람도 내면 어딘가에는 깊은 우울함이 있을 수 있다. '관계조'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한 사람(같은 조표)에게서 나올 수 있는, 기쁨(장조)과 슬픔(단조)이라는, 상반된 감정에 비유할 수 있다. 음식으로 치면 요샛말로 '단짠(달고 짠 맛)'이라고나 할까.
장재진 기자(장): 조성의 개별 성격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조성 간 관계를 안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 관계조에 있는 조성들은 화성(화음의 연결) 구조가 비슷하다. 때문에 어떤 조성으로 시작된 곡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른 조성으로 변환(조바꿈)될 때, 높은 확률로 관계조의 조성으로 변한다. 쉽게 말해 C 장조로 힘차게 시작된 곡이 어두운 분위기로 바뀔 경우 A 단조가 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장: 음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곡 분위기 변화를 예상해보는 힌트가 되겠다.
'엘리제를 위하여'에 쓰인 조성
지: A 단조도 다른 조성과 구분되는 고유의 색깔이 있다. 단아하지만 구슬픈 소녀를 떠올리게 만든다.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 A 단조로 작곡됐다. 가사를 보자. '소녀여, 당신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속삭이는 바람 속에 계단이 있는걸 모르시나요.'
장: 클래식 장르에서도 우아하지만 슬픔을 머금은 여인이 피아노곡으로 묘사됐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곡,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역시 A 단조로 쓰였다. 1810년에 작곡된 이 바가텔(짧은 곡)은 주인공 '엘리제'를 둘러싸고 지금까지도 그 정체에 관한 수많은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확실한 건 작곡가의 아련함이 악보 마디마디 묻어난다는 점이다.
지: 청년 멘델스존이 영국 스코틀랜드를 여행했을 때 메리 여왕이 살았던 고성을 보며 느꼈던 쓸쓸함은 교향곡 3번(A 단조)의 작곡 동기가 됐다. 메리 스튜어트는 어린 나이에 여왕이 됐지만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인물이다. 멘델스존 교향곡 3번을 지휘할 때면 감상에 젖게 만드는 시가 담배와 위스키가 생각난다.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성남시립교향악단(금난새 지휘)이 연주한다.
장: 한평생 슬픔을 머금었던 작곡가 브람스가 쓴 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중협주곡(4월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향 공연)이나, 슈만의 피아노(6일 인천시향)ㆍ첼로(11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협주곡도 A 단조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지: 연약한 구슬픔을 모차르트만큼 순결하게 표현한 작곡가도 없다. 모차르트의 '론도 A 단조'(K. 511)가 대표적이다. 2019년 발매된 조성진의 디지털 싱글 앨범에 수록돼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30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이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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