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기획한 최정윤 일일공일팔 대표
동아기획 옛 주소서 따온 사명
"음악 역사의 기록이 곧 우리 삶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
서라벌레코드는 1970~80년대 주요 음반사였다. 산울림과 들국화, 이문세의 유명 앨범이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2004년 문을 닫기 직전까지 국내 마지막 LP공장으로 남아있던 터라 음반을 찍기 위해 많은 가수가 이곳으로 마스터테이프(릴 테이프로 된 녹음 완성본)를 보냈다. 서라벌레코드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루에 6,000장의 LP를 찍었다. 사라진 음반사,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인 그 마스터테이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정윤 음악감독은 2년 전 문득 떠오른 이 생각을 쉬 떨치지 못했다. "왜 영화는 아카이빙(기록하고 보관하는 일)이 잘 되는데, 음악은 안 될까?" 평소 친분이 두터운 윤일상 작곡가와 이런 대화를 나눈 뒤 최 감독은 결국 용단을 내렸다. 2019년 여름, '일일공일팔'이란 회사를 차렸다. 음악 자료를 아카이빙하기 위해서다. 회사 이름은 고 조동진과 김현식, 그룹 들국화와 봄여름가을겨울, 가수 장필순 이소라 등이 거쳐 간 동아기획 옛 사무실 주소(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110-18번지)에서 따왔다.
"이 순간도 우리의 소중한 음악이 사라지고 잊혀지잖아요. 기록해야 미래도 있죠. 음악 발자취를 기록하는 건 곧 우리 삶의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최근 서울 성수동 일일공일팔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음악으로 30년 동안 밥벌이를 하다 보니 늘 대중음악에 빚을 진 기분이라 그걸 이번에 갚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한 음악 아카이빙 회사, 첫 프로젝트는 '대중음악 100년사 정리'였다.
최 대표는 그 일환으로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를 기획했다. 대중음악 중흥기를 장르별로 나누고, 그 '유적'을 만든 사람과 공간을 찾아 역사를 기록하고 촬영했다.
출발은 성공적. 지난 14일 마지막 방송까지 총 10회가 두 달여 동안 전파를 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시청자들이 음악에 얽힌 추억을 담아 올린 글과 사진이 굴비 엮이듯 이어졌다. 최 대표는 "10~20대가 과연 볼까 걱정했는데 우려와 달리 '몰랐는데 보다 울컥했다' 등의 반응이 많아 놀랐다"며 웃었다.
긴 여정이었다. 제작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양희은을 비롯해 이문세, 장필순, 싸이, 방탄소년단 등 가수를 비롯해 박주연 작사가, 최세영 서울스튜디오 대표 등 207명을 대상으로 인터뷰가 진행됐고, 촬영 분량만 1만 5,012분에 달했다. 6mm, VHS 등 옛 방식의 영상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첫 촬영은 지난해 8월 24일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시작됐다. 김민기 대표가 공연장뿐 아니라 김광석 공연 자료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최 대표는 "김 선생님께 왜 아직도 학전을 놓지 못하고 있냐 여쭸더니 '누군가는 지켜야 되니까'라고 하시더라"며 "그 말씀이 이 프로젝트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예중·예고를 다녔던 최 대표의 삶은 고등학생 때 라디오에서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들은 뒤 확 바뀌었다. 클래식을 배우던 학생에 당시 대중음악은 '금기'였다. 최 대표는 "오빠가 녹음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카세트테이프를 우연히 듣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등을 알게 됐다"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구나'를 알게 됐고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 쪽으로 발을 들였다"고 했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에선 출연 가수들이 보관하고 싶은 자료를 상자에 넣는다. 최 대표는 아카이빙하고 싶은 가수로 김민기를 꼽았다. "후렴에 휘파람 소리가 아득한 '그 사이'를 정말 좋아했어요. 이번에 양희은 선생님이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불러줘 울컥했습니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끝났지만, 대중음악 아카이빙은 앞으로 '우리가요' 홈페이지에서 꾸준히 이뤄진다. 최 대표는 "조용필과 서태지를 비롯해 아직 다루지 못한 음악인과 역사가 너무 많다"며 "서울 부산 등에서 아카이빙 공간을 따로 만드는 것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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