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팬들에겐 전무후무한 일이 지난 주말 벌어졌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이른바 막장계의 트로이카로 불리는 김순옥(SBS '펜트하우스')·문영남(KBS '오케이 광자매')·임성한(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작가의 작품들이 한날 연달아 안방을 찾은 것. 불륜과 복수 등 낡고 뻔한 소재들에 자극적인 양념을 뿌린 후 새롭게 포장해 내놓은 이들 작품은, 동시에 감추고 싶은 현실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공감도 사고 있다. "김순옥 드라마는 완전히 딴 세상 얘기 같은데 자꾸 보게 되고, 문영남 드라마는 나하곤 상관 없는 일 같지만 이웃집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반면 임성한 드라마는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내 얘기 같다.(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분석. 여하튼 저마다의 재주로 시청자를 홀리는 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미스터리 스릴러와 만난 문영남표 가족극
13일 첫 방송된 '오케이 광자매'는 2회 만에 시청률 26.0%를 기록했다. 미니시리즈 '왜그래 풍상씨(2019)' 이후 2년 만에 KBS 주말극으로 돌아온 문영남표 가족극이라는 점에서 놀랍진 않은 결과다. '소문난 칠공주(2006)'와 '왕가네 식구들(2013~2014)'을 통해 각각 44.4%, 48.3%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한 문 작가는 KBS 주말극에서 더한 위력을 발휘해왔다.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문법에 비껴서 한 가족 내부의 갈등을 다루는 데 특출난 그가 이번에 선보인 작품 역시 '홈드라마'다. 그걸로는 부족해 '미스터리 스릴러 멜로 코믹 홈드라마'를 표방한다. 부모의 이혼 소송 중 엄마가 피살되고, 가족 모두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다. 스릴러 요소를 버무린 멜로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 같은 복합 장르극의 유행에 올라탄 것. 가족극의 한계를 넘기 위한 파격이면서 흥미를 끄는 요소다.
윤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으로 성인이 소형 마스크를 끼는 장면에서 보듯 문 작가의 장기인 세태풍자극으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며 "풍자와 해학을 위한 과장과 과잉은 굉장한 장점"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막장으로 흐를 여지 또한 남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결국 누가 엄마를 죽였는지 가족 간에 서로 의심하면서 그 가족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며 "대가족이 사라진 상황에서 더 이상 가족극이 주말드라마 형식으로 유효하지 않은 만큼 가족극의 식상함을 깨는 시도인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보기 힘들어 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온 임성한... TV조선과 찰떡궁합
'압구정 백야(2014~2015)' 이후 절필했다가 '피비'라는 필명으로 6년 만에 돌아온 임성한 작가 역시 건재를 알렸다. 지난 14일 막 내린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결사곡)'은 TV조선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9.7%) 기록을 새로 썼다. 상반기 중 시즌2로 다시 돌아온다.
30대부터 50대까지 내세운 부부를 통한 남편의 불륜·이혼을 다룬 '결사곡'은 구성에서 변화를 꾀했다. 1~8회 전반부는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의 불륜을 바라보고, 이후 후반부는 10개월 전으로 돌아가 불륜을 추적하는 식이다. 눈에서 레이저빔을 쏘거나 주요 인물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웃다 죽는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황당무계한 설정은 덜어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각각 남편의 상대역인 불륜녀 찾기에 나서게 하는 등 한층 진화된 모습이다. 정 평론가는 "후반부는 남편이 어떻게 불륜에 빠지게 되는지 그 과정을 욕망의 차원이 아닌 로맨스처럼 다뤘는데, 오히려 표현의 파격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라며 "더 나아가 구조화해서 보여주는 장치들은 전작들보다 세련돼졌다"고 평했다.
TV조선과의 궁합도 잘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흔한 불륜 코드를 빠르지 않은 속도로 끌고 나가는 작품 특성상 나이가 있고, 보수적인 스타일을 선호하고, '본방사수'하는 해당 채널 시청층과 잘 맞았다"고 말했다.
김순옥 '펜트하우스'는 순항 중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는 이달 19일 시작한 시즌2도 최고 시청률 26.9%를 기록하면서 순항 중이다. 2008년 '아내의 유혹'으로 뒤늦게 막장 대열에 합류한 김 작가는 숨쉴 틈 없는 엄청난 속도의 전개와 예측 불가한 반전으로 막장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이다. 납치, 감금, 살인, 시체 유기,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 등 온갖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로 뒤범벅됐지만 시청률뿐 아니라 화제성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화제성 조사에 따르면 '펜트하우스'는 드라마 부문 3주 연속 1위에 오른 데다 출연자 부문에서도 8명이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공 평론가는 "애초에 개연성을 내려놓고 보는 드라마인 만큼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민낯을 조롱해가면서 보는 재미가 있고, 스케일이 커서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세고 강한 자극이 역치를 넘겼다는 지적도 있다. 정 평론가는 "심수련(이지아)이 살아 돌아올 걸 다 알 정도로 시청자들이 파격을 이해하게 된 측면이 있다"며 "자극에 속도를 더하는 방식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면 시청자 이탈 가능성이 있는데 그 지점에 와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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