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이 원하는데...저는 낳기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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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이 원하는데...저는 낳기가 무서워요

입력
2021.03.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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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희는 결혼한 지 3년 된 부부입니다. 초반에는 서로가 달라 자주 싸웠지만 지금은 서로 맞춰가며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결혼 전 저는 아이 낳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내니 그런 중요한 문제를 왜 결혼 전에 말하지 않았냐고 합니다. 속인 건 아니고 그 문제에 별생각이 없었다고 했지만 남편은 제가 결혼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남편은 아이 없이 사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아이가 없으면 불행할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남편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아이 낳는 문제 때문에 남편과 헤어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듭니다. 저는 아이가 생기면 지금의 평화가 깨질 것 같아요. 아무리 육아를 같이한다고 해도 여자인 제가 부담하는 몫이 클 수밖에 없을 테고, 나중에 그 문제로 남편을 원망하게 될까 두려워요.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 절대로 그 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둘이 살았어요.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계속 집에 안 들어왔어요. 어느 순간 너무 자연스럽게 제 인생에서 사라져 버려서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 같아요. 어린 마음에 어머니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지 못했고, ‘이제 더는 아버지와 같이 살지 않는구나’라고 받아들였어요.

어머니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어요. 저를 위해 항상 열심히 일하셨고, 그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저를 만나는 걸 막지 않았는데도 한 번도 저를 보러 온 적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저를 키워주셨고, 지금은 다정한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제 삶을 돌아보면 그리 행복하진 않았어요. 항상 마음 한 곳에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했고 외로웠어요. 그래서 혹시나 제 아이에게도 저와 같은 상황이 생겨서 저 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갈까 걱정이 됩니다. 물론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저도 이혼하는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제 기억 속 부모님은 항상 사이가 나빴고, 그래서 이혼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결혼할 즈음 어머니로부터 예전에는 아버지와 서로 사랑했고 사이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히려 지금의 제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생겼어요. 그래서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서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되면 엄마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게 두렵기도 합니다.

김서연(가명ㆍ36ㆍ회사원)


서연씨, 요즘엔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꽤 많습니다. 그중에는 아이를 기르는 일이 힘들고,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출산을 하지 않는 부부들도 있어요. 서연씨는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서연씨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그 밑면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요. 제가 추측하건대 서연씨는 아이를 떠올렸을 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 같아요. 물론 누구나 임신, 출산, 육아가 두려울 수 있지만 서연씨는 다른 사람보다 더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서연씨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스스로 자기 감정에 대한 확신과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에서의 신뢰가 부족해서인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확신은 인생을 살면서 겪는 변화,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걸 말해요. 자기 자신과 중요한 대상자의 감정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하게 믿는 거예요.

좀 더 쉽게 설명해볼게요. 남녀 간의 사랑은 부부로 살아가면서 조금씩 변해요. 사랑의 진화라고도 말하는데요, 처음에는 불타오르는 사랑이었지만 삶을 함께하면서 동반자적인 사랑으로 변하기도 하고, 상대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해요. 사랑의 감정이 다양해지고 변화하지요. 이 변화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면 감정의 믿음이 기반돼야 해요. ‘배우자가 5년 뒤에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내 배우자는 좋은 사람이고, 나를 계속 사랑해 줄 거야’ 하는 신뢰를 통해 확신을 갖고, 안정적이고 긍정적으로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서연씨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믿음과 확신이 부족한 것 같아요.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만, 상황과 조건이 맞지 않으면 배우자나 당신의 마음이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고 걱정해요.

아이 낳는 문제에서도 그런 생각이 앞장서요. 누군가가 당신에게 ‘아이가 물속에 빠지면 어떻게 할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누구나 당연히 ‘뛰어들어야죠’라고 대답할 수 있는 문제도, 당신은 ‘내가 과연 뛰어들 수 있을까’, ‘내 마음이 과연 그럴까’ 하며 강하게 의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떠올렸을 때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내가 아이를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목숨 바쳐 키웠는데 아이가 나중에 나를 떠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당신 안으로 밀려들 거예요. 자식을 낳았을 때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랑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 아이를 갖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게 다가왔을까요.

게티이미지뱅크

서연씨가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덜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건 절대로 아닙니다. 당신의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은 당신의 성장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할 때 자녀에게 상처를 덜 주려면 두 가지 메시지를 꼭 전달해야 해요. 첫 번째는 이혼을 해도 자녀를 사랑하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혼의 이유가 자녀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최소한 이 두 가지 메시지는 자녀에게 충분히 전달돼야 자녀가 상처를 덜 받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직접적으로 키우지 않는 부모라도 자주 안부를 묻고, 격려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최소한의 부모의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부모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인간관계를 약간이나마 편안하게 받아들여요.

그런데 당신에겐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이 핵심적인 두 가지가 없었어요.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와 멀어졌고, 오랫동안 만나지도 못했어요. 아버지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어요. 부모의 이혼도 상처지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을 때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아버지가 나를 찾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이후 아버지와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어머니의 얘기는 당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거예요. 두분이 깊이 사랑했지만 헤어졌다는 사실은 언제라도 사람의 마음이 변할 수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을 당신에게 심어줬을 거예요. 당신의 마음도 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커졌을 거고요.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돼서 고민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느껴져야 할 인간관계의 과정은 당신에게 유독 힘들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 내면에 언제나 모호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다행히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당신은 성인 대 성인의 인간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감을 유지하면서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정한 배우자도 만났고요.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데서 내면에 있던 불안이 탁 건드려진 것 같아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이 드러났을 거예요.

서연씨, 당신이 부모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아차리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아이들의 문제가 있을 때 부모를 자꾸 얘기하는 것은 그 아이의 문제가 부모 탓이어서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영향이 너무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서연씨가 유독 마음이 힘든 부분이 있다면 부모가 준 영향이 무엇인지 잘 알아차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 안에는 불안함이 있지만 다행히 아이를 낳는 것 외에는 안정적이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당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자각하면서 남편과도 아이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아이를 낳을지 말지에 관한 논쟁보다는 ‘아이를 키울 때 어떤 느낌일까’, ‘우리가 아이를 기르면 어떤 점이 힘이 들까’와 같이 범위를 좀 넓혀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 과정에서 당신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도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결혼 전 당신의 성장 과정의 아픔도 가까운 사이인 배우자에게 얘기하고, 가정 내에서 위로와 공감을 받으면서 부부간의 사랑을 진화시켜 보세요.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불안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것은 내면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예요. 만약에 당신이 엄마가 된다면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아이를 낳는 순간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예요. 물론 한 아이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때는 ‘내가 모성애가 부족한가’, ‘내가 아이를 덜 사랑하나’라는 고민보다는 ‘아이가 편안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걸 잘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 됩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아이를 낳으란 얘기는 절대 아니에요. 다만 서연씨가 이렇게 자기 내면에 있는 불안을 해결하고자 문턱을 넘고, 여기에 문을 두드린 것, 그 의지가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 혹시 있을 미래의 아이를 위한 사랑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고, 그것이 당신 안에 있는 엄청난 사랑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면서 잘 가꿔나가길 바랍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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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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