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성희롱 사건과 조직의 회복
편집자주
서울시장 선거가 다음 달 7일로 임박했습니다. '2차 피해' 문제는 잊히고 '대선 풍향계'로만 주목받습니다. 박원순 사건이 낳았던 2차 피해 문제를 <상> <하> 에 걸쳐 짚어봅니다. 하> 상>
"성희롱 처벌이 강화되면서 조직문화 개선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어요. 2차 피해에 대해 사업주까지 처벌한다는 식으로 처벌만 강화하니, 조직들은 정작 가해자나 책임자 찾아내 쫓아내고 상황을 정리하는데만 급급해진 거죠"
최근 만난 변혜정 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변 전 원장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장, 서강대 성평등 상담실 상담교수, 충북 여성정책관 등을 지낸 성폭력 문제 전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직장 내 성희롱을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2019년 2월, 취임 1년 4개월 만에 여성인권진흥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변 전 원장은 2018년 진흥원 내에서 발생한 동성간 성희롱 사건을 조사, 처리했다. 성희롱이 입증되지 않자, 피해자가 다른 직원들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등의 일이 이어졌다. 문제는 추가 성희롱 가해 행위를 막고 직원 소통을 위해 열린 조직 문화 개선 회의에서 사건 내용이 공개됐다는 이유로 변 전 원장이 해임됐다는 점이다.
변 전 원장은 "이 복잡한 사안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려는 조직 내 활발한 토론과 소통이 필수적인데 ‘2차 피해’ 잣대만 들이대면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변 전 원장은 자신의 해임이 절차적으로 부당하다고도 했다. 여가부 감사 결과도 통보받지 못한 상태에서 진흥원 임시이사회는 급하게 해임을 의결했다. 그는 민사소송 등 대응책을 강구 중이다.
변 전 원장은 이런 발 빠른 해임의 배경에 대해 구체적 말은 아꼈지만 '2차 피해 프레임의 남용' '처벌 만능주의' '조직의 꼬리 자르기식 대응'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했다. 성희롱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조직의 책임자는 신중하고도 빠르게 사안을 조사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2차 피해를 이유로 사소한 문제를 꼬투리 잡기 시작하면 공동체적 해결 방식은 요원하다.
변 전 원장은 “사안이 민감하기도 하지만, 복잡다단하고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성희롱 사건의 특징"이라며 "여기다 2차 피해 논란까지 따라붙으면 조직 관리자 입장에서는 그저 '난 모른다, 빨리 정리해라'는 식으로 발을 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직의 책임자라면 성희롱 문제 해결뿐 아니라 조직문화 개선에도 책임이 있는데, 다들 그저 사건이 빨리 종결되기만 바라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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