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린'이 역주행하기 전만 해도 이 길을 괜히 선택했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버티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도 오네요. 버티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브레이브걸스 유정)
4년 전 발표한 '롤린(Rollin')'이 유튜브 영상을 타고 순식간에 히트곡이 되면서 걸그룹 브레이브걸스(민영 유정 은지 유나)는 데뷔 이후 10년 만에 벼락 스타가 됐다. 차트 역주행이 시작되기 닷새 전만 해도 심각하게 해체를 논의하며 숙소에서 짐까지 뺐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국내에서 가장 바쁜 걸그룹이 된 것이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되자 브레이브걸스 멤버들도 당황스러운 듯했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브레이브걸스의 막내 유나는 "데뷔 이래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응원 받은 적이 처음이어서 얼떨떨하다"고 했다. 맏언니 민영은 "4년 전에 나온 노래가 갑자기 역주행을 하니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며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음원차트 1위 소식에 감격의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웃는 모습이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꼬부기를 닮았다고 '꼬북좌'로 불리는 유정은 "설마 음원차트 1위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1위에 오르니 눈물이 났다"고 했다.
브레이브걸스는 유명 작곡가 용감한형제가 기획한 여성 아이돌 그룹으로 2011년 5인조로 데뷔했다. 지금 활동 중인 네 멤버는 모두 브레이브걸스가 2016년 7인조로 재데뷔할 때 합류했던 이들이다. 아이돌 가수치곤 적잖은 나이인 20대 중반에 데뷔해 이제 평균 나이가 서른에 이른다. 그 사이 브레이브걸스 2기 활동을 함께 시작했던 3명이 떠나갔다.
대여섯 시간 차를 타고 가서 공연하는 것보다 힘든 건 일정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걱정거리였다. 유정은 얼마 전 한 유튜버와 인터뷰에서 "멤버들끼리 우리는 뭘 해도 안 되니 이런 거 하지 말고 평범한 일을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실제로 유나는 최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뒤 카페를 운영해볼까 생각했다고 한다.
아이돌 그룹에게 한없이 길어지는 공백은 곧 팀의 위기를 뜻한다. 이들은 지난해 '운전만해'를 내놓기 전 2년여간 휴지기를 가져야 했다. 민영은 "'운전만해'로 나오기 전에는 기약 없이 연습을 해야 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더욱 힘든 시기는 야심 차게 내놓은 '운전만해'가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낸 이후 찾아왔다. 코로나19로 군부대 공연도 할 수 없었던 시기. 멤버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음악을 떠나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대화가 오갔다. 유정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자존감이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기적적인 역전극은 유튜버 '비디터'가 지난달 말 영상 하나를 유튜브에 올리면서 시작했다. '롤린'으로 활동하던 당시 촬영된 군부대 위문공연 등 여러 영상에 재치 넘치는 댓글을 입힌 것이었는데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타고 순식간에 SNS에서 가장 뜨거운 영상이 됐다. 3월 들어선 하루에만 수십만 조회수가 늘며 12일 700만 조회수를 훌쩍 넘어섰다. 4년 묵은 '비운의 명곡'이 최신 히트곡이 된 것이다. '롤린'은 벅스를 시작으로 지니, 플로, 멜론까지 국내 4대 음원차트 정상을 모두 석권했다. 은지는 "소셜미디어 환경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댓글을 모아 편집해서 올려준 비디터님, 우리 노래를 알아봐주신 분들, 그 전부터 우리를 응원해준 팬분들까지 네 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져 행운이 온 것 같다"고 했다.
'롤린' 영상은 군인들의 우렁창 떼창과 광란에 가까운 몸동작이 화제를 모으며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영상 속 군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가오리춤을 추며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진심으로 공연을 즐기는 듯 최선을 다하는 멤버들의 퍼포먼스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음악 방송에 가서 그렇게 큰 함성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위문 공연 무대에 설 때마다 많은 분들이 환호성을 질러주고 따라줘서 신나게 공연할 수 있었죠."(유나) "군부대는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 힘들기도 했지만 도착해서 무대에 오르면 너무나도 큰 호응에 에너지를 얻고 갔던 기억이 나요. 모든 무대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어요. 오히려 위문 열차 무대에 설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당시엔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싶어 팬들에게 무리한 공약도 내걸었다. 1위에 오르면 삭발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살려주세요.(웃음) 정말 오래 전에 한 공약이에요. 어떻게 온 기회인데 삭발을 하고 활동할 순 없잖아요."(민영)
데뷔 이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브레이브걸스는 요즘 다시 데뷔하는 기분으로 뛰고 있다. 역주행이 화제가 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잠깐 회자되다 말 테니 너무 기대하지 말고 설치지도 말고 상처 받지도 말자"고 이야기할 만큼 실껏 기뻐하지도 못했지만 이젠 '이 순간을 즐기자!'고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미래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음원 차트 1위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계속 욕심이 생기네요. 음악 방송에서 1위도 해보고 싶고, 시상식에도 한번 나가보고 싶어요 .하하."(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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