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30+, 2기 진실화해위에 진정서 접수?
장준하 선생 의문사 등 18건 진상 규명 촉구?
앞선 세 번의 진상규명, "이번에는 유족들 한 풀어달라"
30년 넘게 죽음의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 우리는 4번째 신청서를 들고 모였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제는 국가가 싸워서라도 자료를 찾고 협조를 받아내주십시오.
고(故) 장준하 선생 아들 장호권씨
군부 독재정권 당시 의문의 죽임을 당했던 피해자 유족들이 또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억울한 죽음을 처음 호소했던 때가 1988년. 어느덧 33년이 흘렀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대부분 죽음이 '조사 불능', '기각' 처리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과 추모 단체 연대체인 의문사진상규명30+는 1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문사 진상 규명 진정서를 접수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2월 2기 위원회를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접수한 진정서에는 1975년 계곡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고 장준하 선생 사건을 비롯, 의문사 총 18건이 포함됐다.
유족들은 앞서 30여년간 국가에 의해 진행된 세 차례 의문사 조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72)씨는 "1기와 2기 의문사규명위원회, 그리고 1기 진화위에 이르기까지 조사 기회가 세 번 있었다"면서 "매번 '국정원이 자료를 주지 않아', '기무사가 협조를 하지 않아서'란 이유로 조사 불능이란 결정이 돌아왔다"고 꼬집었다. 장씨는 "2기 진실화해위는 시대적 소명을 잊지 말고 모든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은 1999년 12월 국회에서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물꼬를 텄다. 1988년 10월에야 기독교회관에 모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유족들이 1998년부터 422일간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이며 어렵게 얻어낸 결실이었다.
진상규명 성과는 유족들에게 미흡했다.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1기 의문사위원회가 활동했으나 장준하 선생 사건 등 상당수가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았다. 이준영 장준하기념사업회 전 사무국장은 "관련자들 기억력 한계와 진술 번복, 위원회가 가진 권한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2기 의문사위원회와 1기 진실화해위 역시 흡족한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다.
유족들은 전문성 있는 인력과 충분한 조사 기간 확보를 강조했다. 박성호 추모연대과거사특위장은 "조사개시를 서둘러 충분한 조사 기간을 확보하고, 위원회 활동을 정기적으로 유족 단체에 보고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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