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왕실 "사안 심각하게 다룰 것" 성명
22%는 해리 부부, 36%는 왕실에 공감
대응 따라 왕실폐지론 불붙을 가능성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메건 마클 영국 왕손빈의 ‘폭탄 발언’ 후폭풍이 거세다. 왕실이 이틀 만에 침묵을 깨고 진화에 나선 데다 왕실을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지만 사태가 잠잠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왕실이 추문에 휩싸일 때마다 불거지던 ‘왕실 폐지론’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9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버킹엄궁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해리 왕손 부부 인터뷰에서) 제기된 문제들, 특히 인종 관련된 것은 매우 염려스럽다”며 “이 사안은 심각하게 다뤄질 것이고 가족 내부에서 사적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리ㆍ메건 부부의 인터뷰가 전파를 탄 지 40시간 만에 왕실 공식 입장이 나온 것이다.
애초 왕실이 직접 해명을 내놓으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5,000만명(미국 CBS방송 집계)에 달하는 사람들이 인터뷰를 지켜보는 등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데다 인종차별이라는 이슈가 워낙 인화성이 큰 만큼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종차별이 주요 쟁점 중 하나라는 점을 왕실이 인정했지만 해리 왕자 부부의 ‘진실’이 절대적이라고 명시하지도 않았다”고 분석했다.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진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일단 영국 민심이 갈라졌다. 국제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이날 4,6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해리 왕손 부부에 공감한다는 응답 비율이 22%, 여왕과 왕실에 더 공감한다는 답은 36%였다. 어느 쪽에도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28%나 됐다. 연령이 많고 보수당 지지 성향일수록 왕실에, 연령이 적고 노동당 성향일수록 해리 왕손 부부에 우호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이날 영국 ITV방송의 유명 뉴스 진행자 피어스 모리슨이 메건의 인종차별 언급을 두고 “일기예보를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 “피노키오 왕손빈” 같은 표현으로 힐난하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게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여론의 반영이다. 그의 발언에 4만1,000건에 달하는 진정이 접수되자 규제 당국은 가학성 및 방송윤리 준수 여부를 가리는 조사에 착수했다.
파장은 왕실 폐지론으로까지 번지는 분위기다. 1983년부터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영국 시민단체 리퍼블릭의 그레이엄 스미스 대표는 “영국 국민 20%는 군주제가 사라지길 원한다”며 “대중은 왕실에 대한 의구심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상에서도 해시태그 ‘군주제를 폐지하라(#AbolishTheMonarchy)’가 확산하고 있다.
물론 아직 전반적 기류가 왕실에 야박하지는 않지만 인종차별 논란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폐지론이 불붙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로이터통신은 이 인터뷰가 이번 세기 영국 군주제가 맞은 가장 큰 도전이라고 경고했고, 왕실역사학자인 캐롤린 해리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미 일간 USA투데이에 “인터뷰가 가져온 영향 중 하나는 왕실 후손들이 간소화된(역할이 축소된) 직무에 맞닥뜨릴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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