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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목소리가 더 컸다면... 자국 직격한 日영화 '스파이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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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목소리가 더 컸다면... 자국 직격한 日영화 '스파이의 아내'

입력
2021.03.11 04:30
수정
2021.03.1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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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쿠(오른쪽)와 사토코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다. 하지만 시대는 두 사람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유사쿠(오른쪽)와 사토코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다. 하지만 시대는 두 사람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스파이의 아내'. 엠앤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스파이의 아내'. 엠앤엠인터내셔널 제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40년 일본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는 자유분방하다. 영국이 일본의 적대국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영국인 친구와 허물없이 교유한다. 외국산 위스키를 즐기고 단편영화를 직접 촬영하기도 하며 전망 좋은 저택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유사쿠의 생활 방식에 기꺼이 동참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고베 헌병대장으로 부임한 사토코의 어릴 적 친구 다이지(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이런 유사쿠와 사토코가 못마땅하다. 미국과 전운이 감도는 위급한 시국에 현실은 외면한 채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한다는 이유에서다.

25일 개봉하는 ‘스파이의 아내’는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한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맹렬히 통박한다. 일본 영화로는 매우 드문 경우다.

비판의 주체는 유사쿠다.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사회 분위기가 떨떠름했던 그는 만주에 출장 갔다가 참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관동군의 생체 실험을 접하고 이를 미국에 알릴 생각을 한다. 세계 여론이 들끓으면 미국이 대일 전쟁을 서둘러 결심할 것이고, 일본제국주의가 패망과 함께 조기에 막을 내릴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일본인 입장에선 매국노의 발상이지만 유사쿠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 “만국공통의 정의”를 더 따진다.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사토코는 고뇌의 바다에 빠진다. 사랑하는 남편이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조력할 것인가, 행복하고도 안락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인가. 사토코의 선택은 부부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유사코는 아내의 오랜 지인 다이지로부터 스파이 행위를 했는지 추궁받는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유사코는 아내의 오랜 지인 다이지로부터 스파이 행위를 했는지 추궁받는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는 등장인물의 언행을 통해 지식인의 시대적 역할을 강조한다. 엘리트인 다이지는 헌병 일이 “제 취향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면서도 일제를 위해 헌신한다. 고문으로 뽑힌 사람의 손톱들을 무심히 바라본 후 다음 업무를 이행할 정도로 국가를 위해 복무한다. 그에게 유사쿠는 국가기밀을 누출하려는 스파이이고, 사토코는 스파이의 아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다이지에게 사토코가 외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당신이 시대를 바꿀 수 있었잖아요.” 일제의 전쟁범죄를 논할 때 국가라는 장막 뒤로 숨어버리거나 상황 논리를 내세우는 일본 우익 인사들에게 날리는 직격탄과 다름없다.

정치적인 영화지만 정치적인 수사와 메시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세공술이 빼어나다. 유사쿠를 의심하는 사토코의 심리, 사토코의 밀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유사쿠의 모습 등을 정통 추리물의 문법으로 정밀 묘사한다. 사토코의 결단과 유사쿠의 비밀스러운 행보가 반전을 거듭 빚어내며 스릴러의 면모를 갖춘다.

일본 현대 영화의 간판 중 한 명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이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오스카 4관왕을 차지한 후 기자회견에서 구로사와 감독을 자신에게 영향을 준 아시아 감독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최근 세계 영화계로부터 주목 받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행운과 환상의 바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이 각본을 썼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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