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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있는 패배' 잊은 민주당

입력
2021.03.1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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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부산=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부산=왕태석 선임기자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공포 절차를 거쳐 6개월 뒤면 시행된다. 불과 1년 전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시장의 성추문이 없었다면 보기 어려웠을 장면이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를 한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이 영향이 쌓여 훗날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고 했던가. 왜곡된 성의식을 가진 70대 시장이 함부로 손을 놀린 후과로 대한민국은 막대한 선거비용을 들여 보궐선거를 치르는 것은 물론 '묻지마'식 공항 사업에 국민 혈세 28조원을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외해(外海)에 접한 가덕도 일대는 수심이 깊어 매립면적은 인천공항의 12% 수준이지만 매립토량은 1.4배에 달한다는 게 국토교통부 추산이다. 외해에 있어 땅이 내려앉는 부등침하 발생 가능성도 높다. 개항 후에도 천문학적 유지·보수 비용이 든다는 얘기다. 이런 곳에 공항을 지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는 상식이자 공직자에겐 직업적 양심의 발로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이 수세에 몰린 부산 선거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하는 순간 공항 입지로는 부적합하다는 정부 부처의 주장은 깡그리 무시됐다.

발의 3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덕도 특별법은 예비타당성 조사는 물론 31개 법에 따른 각종 인허가ㆍ승인 절차도 다 건너뛸 수 있게 돼 있다. 처음 7조5,000억원짜리 사업은 이제 최대 28조6,000억원으로 부풀었다. 여당 의원조차 “동네 하천 정비도 이렇게는 안 한다”고 토로했다. 가덕도법이 매표 행위라는 의심은 본회의 통과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당정청 고위 인사를 대동하고 가덕도로 총출동하면서 현실이 됐다.

선거에서 승리는 정당의 지상 과제다. ‘피 흘리는 정치가 전쟁이고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정치’라는 격언은 정치에선 적대와 당리당략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가덕도로 PK와 TK로 나뉘어야 대선에서 유리하다는 속내를 여권은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여권이 선거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민심의 법정에서는 확실히 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국가 운영의 원칙과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은 논란이 있어도 잘못된 관행과 정책을 혁파한다는 명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덕도는 표를 얻겠다고 대중에 영합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이다. 그는 “원칙을 짓밟으면 국가 발전에도, 국민 행복에도, 더욱이 역사 발전에도 기여할 수 없다. 그래서 저는 어느 편의 승리보다 원칙의 승리를 간절히 바란다”고도 했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가 앞장 서 원칙을 허물고 싸움에만 몰두한다면 존립 근거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질문이다.

집권 세력이 “기득권의 저항을 뚫기 위해선 수구 세력을 절멸시켜야 한다”는 ‘피포위’ 의식에 사로잡혀 당리당략 행태에조차 정당성을 부여하는 오만함은 확실히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정의당조차 가덕도 공항은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사업 아니냐고 묻고 있다. "지금의 민주당은 ‘의회주의자’ 김대중의 민주당도, ‘원칙주의자’ 노무현의 민주당도,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민주당도 아니다.” 지난해 거여의 단독 개원 당시 회자됐던 말이다. 지금 가덕도에 파묻힌 민주당에 적용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김영화 뉴스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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