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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가 소수자를 혐오할 때

입력
2021.03.09 22:00
수정
2021.03.10 22: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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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몇 년 전 휠체어를 탄 지인과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 어르신이 휠체어를 보더니 "요즘은 장애인이 대통령보다 더 대접받아"라며 대뜸 시비를 걸었다. 왜냐고 여쭸더니 "빈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려고 했더니 못 대게 하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어르신에게 장애인 주차구역의 필요성을 설명하다가 '어른에게 대든다'며 욕을 먹었다. 장애인 지인은 "싸워줘서 고맙다"면서도 "이런 일이 너무 흔해서 나는 이젠 싸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휠체어를 타는 내 딸이 혼자 외출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란 생각 때문이었다.

설 연휴 전 장애인 단체들이 '이동권 보장 약속 이행'을 외치며 지하철에 휠체어 여러 대가 타는 시위를 벌였다. 지하철 운행이 지연됐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비롯해 일부 시민들은 이들 장애인 단체에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얼마 전 트랜스젠더임을 밝혀 강제전역된 군인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대부분 고인의 명복을 빌었지만 혐오를 대놓고 전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가 '어떤 소수자'라고 밝힌 사람들을 포함해서였다.

왜 같은 소수자들이 소수자를 혐오하고 비난할까?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그중 일부는 '저이 때문에 손해나 피해를 본다. 내 것을 빼앗는다'는 사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 지인이 봉변당했던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보자.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20년 동안 장애인 활동가들이 투쟁해 얻어냈다. 그 결과 장애인 대비 최소 5배는 더 많은 어르신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이렇게 소수자들이 연대하여 어떤 권리를 쟁취하면, 보통 다른 소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노예제가 있던 시절 백인-노예소유주-남성들은 노예, 여성, 동성애자 등을 모두 일종의 '장애인'으로 보았다. 1850년대 미국 정신과의사인 사무엘 카트라이트는 "편안한 노예제에서 탈출해 자유를 얻으려 하는 흑인은 정신질환을 앓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여성 참정권을 여성운동가들이 쟁취하기 전 "고등교육은 여성의 몸을 아프게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 팽배했다. 1700년대 미국 이민국 심사에서 장애인이나 동성애자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몸"이라고 낙인찍혀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이랬던 미국의 장애인권이 향상된 건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장애인들의 긴 투쟁이 있었고 거기에 다른 소수자 연대가 있었다. 킴 닐슨의 '장애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1977년 미국 장애운동가들이 샌프란시스코 한 공공건물을 점거해 시위를 벌일 때 성소수자 단체를 비롯해 유색인종인권단체 등이 함께 음식을 가져다주며 연대했다.

나는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이므로 장애인 차별을 하지 말자'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가 어떤 한편으로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휠체어를 타는 딸이 나 없이도 어떻게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봉변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연대하는 수밖에 없다. 무의가 어르신들을 섭외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구간을 리서치한 이유다.

우리 모두가 어느 공간에서는 소수자다. 한국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언어 소수자가 된다. 그러니 잠재적 소수자 모두가 서로 연대해야 하지 않겠나. 어린 시절 어렴풋하게 들었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우리는 너나 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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