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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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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을 소개합니다"

입력
2021.03.10 23:55
수정
2021.03.2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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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자 한지공예명장·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장

이맹자 한지공예명장이 대구 서구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에서 한지 공예 작품을 만들며 웃고 있다. 강은주기자

이맹자 한지공예명장이 대구 서구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에서 한지 공예 작품을 만들며 웃고 있다. 강은주기자


"세상에는 종이로 못 만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지의 세상은 무궁무진합니다. ‘지천년 견오백’이라고 했습니다. 한지는 천년이 가고 비단은 오백년이 간다는 뜻이죠. 한지는 후처리만 하면 물에 닿아도 괜찮습니다."

이맹자(71) 한지공예 명장을 만나기 위해 대구 서구 비산동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를 찾았다. 건물 1, 2층에는 온갖 작품들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장롱부터 장독대, 옷, 스카프, 인형, 컵받침 등 대작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작품 수에 먼저 놀라고, '과연 이것이 모두 종이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작품의 색감과 질감, 정교함에 두 번 놀란다.

명장은 ‘숙련기술장려법’에 의해 선정된다. 15년 이상의 꾸준한 활동과 8년간 매년 개인전시를 해야 한다. 40여 년간 종이 공예의 역사를 써 온 그는 지난 해 10월, 한지공예부문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앞서 이 명장은 2013년에 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에서 명인(26호) 호칭을 받았다.

은행을 박차고 나와 한지공예가의 길로

이 명장 작품의 주요 주제는 장생불사를 표상한 십장생(해·산·물·돌·소나무(대나무)·달(구름)·불로초·거북·학·사슴)이다. 대나무의 올곧음과 소나무의 한결같음을 삶의 기본 덕목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이 문양 하나만 가슴에 새긴다면 상대를 배려하고 편안하게 장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장롱 제작에는 보통 6개월이 소요된다. 그는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밤 12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종이만 들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작업장을 둘러쌓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오리고 붙이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요즘은 좌경대, 왕자반지고리 등을 만들어 전통문화 알리기와 전통문양 현대화를 위해 애쓴다. “전통공예품이라고 해서 집이나 사무실 한구석에 모셔 둘 필요는 없다”면서 한지공예의 예술성과 실용성을 역설했다.

이맹자 한지공예명장이 2019년 8월 강원도 횡성군 한얼문예박물관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출품한 십장생 약장.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제공

이맹자 한지공예명장이 2019년 8월 강원도 횡성군 한얼문예박물관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출품한 십장생 약장.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제공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문지를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친구들이 “손재주가 좋다, 손이 야무지다”고 칭찬했다. 학창 시절 학우들 미술과제는 그가 도맡아 해주기도 했다. “신문지를 물에 적셔 뭉개서 만지면 촉감이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십장생을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물건을 만들었다.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었고 어떤 의도도 없이 오로지 재미로 만들었다”고 소회했다.

처음부터 ‘예술가가 되겠다’는 그런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시대였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당시 남들이 선호하는 상업은행에 입사했다. 현실적으로 안주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녀의 삶을 바꾼 계기가 있었다. 20여 년 전 어느 날 일본 책자에서 화지공예를 접하게 되었다.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종이로 저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도 있구나,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구 수성구의 모 호텔에서 일본의 화지 공예가 노자키 후시미 선생의 공예 강습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후시미 선생의 작품에 매료된 그는 시아버지께 통역을 부탁해서 배움을 청했다. 시부모와 가족들의 지지 속에 일본을 오가며 후시미 선생의 가르침 속에 본격적인 한지연구를 이어갔다. 후시미 선생은 올해 87세로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으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한지 공예 대중화에 앞장서다

“일본공예와 한국공예의 차이점요? 통상의 일본사람들은 한 분야를 깊숙이 파고들어 대를 물려주는 문화전통이 있습니다. 한국은 뭐랄까요, 외래문화를 습득하고 토착화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고유의 창조력을 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종국엔 너무 물질적인 부분만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대물림하는 마음으로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는 일본에서 배운 종이공예를 우리나라 전통 한지와 접목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전문적인 기관의 관리 하에 체계적인 시스템과 교육으로 대중화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전부터 1980년에 안동 한지공장에 ‘지예관’을 열어 한지체험과 인재양성으로 도모했고, 대구 최초로 한국여성공예학원을 열기도 했다. 한지공예가로서 작품 활동에만 열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일본을 다녀온 후부터 우리나라 전통 한지 공예의 대중화와 교육의 체계화에 앞장서겠다는 의무감이 더 강렬했다. 기회가 주어지면 장소나 역할 등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전문 강사 양성과정 외에도 대학, 초·중·고 체험학습과 소외계층 및 시골 어르신 문화강좌에도 직접 나섰다. 한지 공예를 배우며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했고, 전문가의 길을 따라나서는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든든했다.

2009년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취약계층에게 기술을 전수해서 그들이 경제적 자립과 사회와 소통하며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작품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작가활동보다 사회적 기업인의 활동과 책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친환경적인 한지공예수업을 통해 잠시 시름을 잊고 즐거워하는 모습과 스스로 치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길을 걸어온 것에 보람을 느꼈다.

이맹자(왼쪽 세 번째) 한지공예명장이 2016년 12월 대구시청 별관 구내식당에서 사회적 기업 임직원 및 자원봉사자들과 김장 나눔 봉사활동 중 사진을 찍었다.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제공

이맹자(왼쪽 세 번째) 한지공예명장이 2016년 12월 대구시청 별관 구내식당에서 사회적 기업 임직원 및 자원봉사자들과 김장 나눔 봉사활동 중 사진을 찍었다.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제공


이맹자(오른쪽 네 번째)한지공예명장이 2019년 8월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환우보호자 공예 나눔 봉사후 간담회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제공

이맹자(오른쪽 네 번째)한지공예명장이 2019년 8월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환우보호자 공예 나눔 봉사후 간담회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제공


젊은이들에게 전통문화 알리는데 힘쓸 것

그도 워킹 맘의 고충이 있었다. 7남매 맏며느리의 책임감과 3남매를 키우며 일을 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식사 시간과 잠을 최대한 줄이며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시부모와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로 해외와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일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바쁜 엄마를 이해하고 자기 앞가림을 알아서 잘해줬고, 가족들은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교육자이신 시부의 열린 생각이 지금의 나를 있게 준 것이 아닌가 싶어 늘 감사하고 그립다”고 했다.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에는 현장교육강사가 30명, 공방에는 8명이 상주한다. 그는 교육과정을 직접 짜서 강사들에게 제공한다. 칠순의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발휘한다.

“이 분야는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공부할 것이 많아진다. 전통공예라고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 흐름도 따라가야 한다”면서 늦깎이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통한지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문양디자인도 직접 한다. 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맞은 비대면 시대에 부응해 인터넷 강의 등 새로운 상황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명품백이 과연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독창적이며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전통공예품은 가치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다행히도 자신만의 문화를 추구하는 신세대들이 국악이나 한복 등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반가운 일입니다. 젊은이들이 임신 기간 동안 전통공예로 태아교육 및 마음을 다진다면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통문화를 지키고 새로워지겠다는 온고이지신을 새길 때입니다. 전통 문화 대중화와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문화의 소중함과 콘텐츠를 알려주는 것이 나의 소임입니다.”

이 명장은 조만간 그랜드마스터과정에 참여한다. 대구에서 그랜드마스터과정을 수료한 사람은 손꼽아 몇 명이 안 될 정도로 최고의 과정이다. 이 명장은 대구대 미술디자인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조형예술학 석사, 전주대 대학원 한지문화산업을 전공했다. 현재 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 이사장, 전주한지연구소 연구위원, 대구경북공예협동조합 이사, 역사진흥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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