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반군, 마약범죄 연루 이유로 사살 명령
최소 9명 사망... "인권 따위는 잊어도 된다"
반대파 공산세력으로 묶어 싹 자르기 노림수
필리핀에서 좌파 활동가들이 잇따라 피살됐다. 공산 반군이 마약 밀매에 연루돼 있다면서 소탕 명령을 내린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육성 메시지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빌미로 정권을 위협하는 반대 세력의 싹을 자르려 한다는 해석이 많다.
7일(현지시간) 필리핀 매체 인콰이어러에 따르면 이날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진 경찰의 공산주의자 단속 과정에서 노동조합 활동가 등 최소 9명이 숨졌다. 이번 작전은 두테르테의 명령에서 비롯됐다. 그는 앞서 5일 민다나오섬 다바오에서 열린 정부 회의에서 “공산주의 무장 반군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반군과 마주치면 즉각 사살할 것을 군대와 경찰에 명령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 따위는 잊으라. (공산주의자)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면서 고강도 대응을 주문했다.
두테르테는 마약 퇴치를 공산 반군 소탕 이유로 내세웠다. 이들이 필리핀 마약조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7일 세부 방문 자리에서도 “내가 감옥에 가도 된다”며 마약과의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2016년 6월 두테르테 취임 후 지난해 7월까지 4년간 경찰의 마약 단속에 저항하다가 사살된 이만 공식적으로 5,810명에 달한다. 인권단체들은 재판 없는 ‘초법적 처형’까지 합치면 사망자가 3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마약 퇴치 정책의 연장선인만큼 공산 반군 척결은 명분이 충분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외신은 두테르테의 돌연한 행보를 공산 반군과의 ‘내전 종식’ 공약이 무위로 돌아간 데 대한 보복 성격으로 보고 있다. 알자지라방송은 두테르테가 다바오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 반군과 평화 회담을 통한 내전 종식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집권 후엔 공산주의자를 ‘테러리스트’로 칭하면서 대립을 계속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작전이 단순한 마약범죄 일소 차원이 아니라는 점은 사망자 면면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현지 경찰은 9명을 체포하고 6명이 저항하다가 숨졌다고 주장했지만, 무리한 작전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단적으로 사망자들이 공산 반군이 아니라 노조활동가 등 진보 인사들이라는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은 “작전 대상이 무장 반군과 사회 활동가, 노조 지도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집단을 ‘공산 세력’으로 묶어 타깃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알자지라도 “필리핀 당국이 학계와 언론인 등 반(反)두테르테 성향 인물들을 무분별하게 공산주의자로 분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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