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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점 테러라는게 있다

입력
2021.03.05 19:00
수정
2021.03.05 19:3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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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 유료 웹툰 플랫폼에 달린 기괴한 댓글 캡처를 보았다. 댓글을 단 사람은 작품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다른 독자들에게 재밌게 본 다음 별점을 낮게 줄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의 논리는, 별점 총점이 낮아지면 독자의 수도 줄어들게 되니 어떻게든 독자를 유지하기 위해 플랫폼에서 웹툰의 가격을 하향 조절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독자들 모두가 이득이라고.

굳이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읽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내용이긴 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럴 때 정규분포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세상의 수많은 값들이 정규분포를 따르니, 특출나게 이상하고 악랄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 곡선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고, 몹시 적겠지.

안타깝게도 내가 또 한 번 나이브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검색을 해 보니까 놀랍게도 ‘별점을 낮게 주면 내가 이 작품을 싸게 읽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별점 1점)”, “다음 화까지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별점 1점)” 같은 댓글들을 심심찮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패악질을 하면 작가가 위축되어 작품의 연재가 조기에 종료되거나 아예 중단되어 버릴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필연적으로 따라올 창작자의 고통은, 결과적으로 위축될 시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걸까? 나는 이게 불법 공유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복제해서 공짜로 나눠 보는 거랑 뭐가 그리 다른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개인적인 평가를 공유하는 시스템에서 알량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불부터 지르고 보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별점 시스템 그 자체를 스스로의 사디스틱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꾸준히 쫓아다니면서 계속 나쁜 평가를 내리고, 창작자의 SNS 등을 정신이 취약해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런 별점 테러에 창작자들이 익숙해지자, 아예 처음에는 좋은 평가를 하고 충성스러운 팬 노릇을 하다 어느 순간부터 비난을 시작해서 작가의 사기를 뚝 꺾어버리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보였다. 웹 콘텐츠 작가들이 연재를 하는 도중 몸이나 정신 둘 중의 하나, 혹은 둘 모두 병에 걸린다며 푸념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클릭 몇 번만으로도 한 사람의 매출과 정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 사람을 조종하고 쩔쩔매게 만들 수 있다면, 그 하찮기 그지없는 능률감에 도취되어 악의를 뿜어낼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악랄한 개인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정량 평가 시스템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또,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인간들이 얼마나 꼬이냐가 별점 총점을 결정한다면, 그 시스템의 본 목적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긴, 이런 별점 평가는 창작자만 겪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출장 AS 기사들과 콜센터 상담사들의 별점을 매겼고, 그 진상의 역사는 유구했다. 배달음식 업소들의 리뷰난에 말 같잖은 푸념들이 올라오는 것도 일상적이다.

나쁜 것은 끝없이 퍼져나가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의 법칙인가 보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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