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서 '이불-시작' 전시
전시 기간(5월 16일까지) 동안 작가 이불의 초상을 담은 조형물은 올곧게 세워질 수 있을까.
지난 2일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불(57)의 초기 활동을 모은 ‘이불-시작’ 전시회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에서 개최된 가운데, 대형 풍선 작품이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작가의 초상이 인쇄된 이 풍선은 관람객 참여형 작품. 물놀이 튜브에 바람을 넣듯 관람객이 공기 펌프를 직접 밟아 풍선을 일으켜 세워야 작가의 초상을 볼 수 있다. 약 4만회의 펌프질이면 풍선이 10m 높이로 팽팽히 부풀어 오르고 작가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풍선 조형물을 지나 전시실로 들어서면 이불 작가의 ‘소프트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소프트 조각은 홍익대 조소과 출신인 작가가 ‘왜 조각은 단단하고 고정된 재료만 사용해 만들어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지며 고안해낸 개념이다. 작가는 부드러운 천, 가벼운 솜 등을 사용해 새로운 조각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1988년 첫 개인전에서 작가는 소프트 조각을 입고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언뜻 괴물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데, 이를 본 관람객은 충격을 받는 듯했다.
새로운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작가는 날 생선이 부패해 가는 과정을 전시해 주목을 얻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해프닝도 유명하다.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에 초청된 작가는 날생선에 반짝이는 장식을 한 작품 ‘장엄한 광채’를 전시했다. 그런데 미술관 측이 이 작품을 철거해버렸다. 설치 작품에서 악취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목격한 세계적인 미술 기획자 하랄트 제만이 같은 해 리옹비엔날레에서 작품의 원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시를 감행했고, 이를 통해 작가의 전시가 서양에 소개됐다.
1987년부터 10여년간의 초기 활동을 담은 이번 전시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금 봐도 파격적인 시도를, 작가가 30년 전부터 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시를 준비한 서울시립미술관의 권진 학예 연구사는 “30년 전 한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미술의 언어로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을 볼 수 있는 자리”라며 “작품과 관련한 사진 기록과 미공개 드로잉 50여점도 최초로 공개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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