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사항 제공·구호조치 의무 두고 1·2심 엇갈려
2심 "인적사항 제공 안한 것만으로도 가중처벌"
대법 "상해 정도 등 구호 필요성 심리해야" 파기
교통사고로 다친 부상자에 대한 구호 등 적절한 조치 없이 도주한 가해 운전자를 가중처벌하기 위해선 사고 당시 피해자를 구호할 필요성이 실제로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3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에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11월쯤 전남 여수시 돌산읍 소재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트럭을 운전하던 중, 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맞은편에서 교차로에 진입하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A씨는 피해자들에게 이름과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않고, 그대로 달아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승용차에 탑승했던 피해자 2명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1ㆍ2심 재판 과정에선 A씨가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않은 행위뿐 아니라, 부상을 당한 피해자들을 구호하지 않은 책임도 물어 가중처벌을 해야 하느냐가 쟁점이 됐다. 현행 특가법상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않은 채 도주한 가해차량 운전자는 가중처벌 대상이다.
1심은 “나이와 상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를 구호할 필요가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을 땐 도주한 운전자를 가중처벌할 수 없다”고 봤던 2014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A씨의 특가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구호조치가 필요치 않았더라도 피해자에게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않았으면 도주의 고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해당 혐의를 유죄로 봤다.
대법원은 1심 판단에 손을 들어줬다. ‘피해자를 구호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운전자가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않은 행위만으로 가중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재판부는 “특가법상 도주치상죄는 교통사고로 사상을 당한 피해자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이라는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의 경위와 내용, 피해자의 나이와 상해 부위 및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는지 심리하지 않은 채, 인적 사항 제공 의무를 다하지 않고 도주했다는 이유만으로 특가법 위반죄가 성립하진 않는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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