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느린 학습자를 아십니까?

입력
2021.03.04 20:00
25면
0 0
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을 일컫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피치마켓 도서로 독서 활동하는 모습. 피치마켓 제공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을 일컫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피치마켓 도서로 독서 활동하는 모습. 피치마켓 제공


'느린 학습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그중에서도 장애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나도 수업 중 학생들의 발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느린 학습자(slow learner, 경계선 지능)는 표준화된 지능검사 결과가 지능 지수(IQ) 전체 평균인 100점을 기준으로 IQ 71점 이상 84점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IQ가 85 이상이면 평균 범주에 해당하고, 70 이하면 지적장애에 해당하기 때문에, 느린 학습자는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 지능보다는 낮은, 경계선의 지능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대부분 주의 집중이 어렵고, 적절한 상황 판단이나 대처능력이 부족하고, 감정 표현이나 의사소통에 서투른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두드러지게 학습이나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교에서 학습 부진, 저성취로 인해 답답한 아이, 공부 못 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거나, 또래 사이에서는 사회성이 부족하여 눈치 없는 아이로 불리기도 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해서 낮은 자존감으로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초·중·고교 시절에 이런 모습을 보였던 이들이 떠오를 것이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인구의 12~14% 정도로 추산되며 우리나라도 전국 80만명에 이른다. 한 학급에 3명꼴로 있는 셈인데 이들에 대해서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 잘 모른다. 많은 느린 학습자들이 학교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에서도 마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며 살아온 것이다.

느린 학습자는 지적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교육에서도 사각지대에 있었다. 지적장애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특수교육 대상자도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특수교육으로 가더라도 그곳에서 오히려 중증 장애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치되기도 한다. 또한 이것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에도 맞지 않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동들이 초기에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평균 지능 범주로 발전하기도 하고, 반대로 방치되는 경우 인지기능이 지적장애 수준으로 퇴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초기의 개입과 맞춤형 교육은 필수적이다. 이런 느린 학습자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느린 학습자 지원법'으로 불리는 2016년 초·중등교육법 개정도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느린 학습자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느린 학습자는 말 그대로 천천히,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배우는 사람들이다. 적절한 학습적 중재만 있으면 학습효과뿐 아니라 학습 동기나 자아존중감이 향상된다는 연구 보고들도 많다. 그래서 이들이 가지는 지식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읽기 쉬운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사단법인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들이 어린이 동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또래와 같이 세계 명작 도서, 청소년 필독서, 자기 계발서를 읽을 수 있도록 쉬운 글로 재구성한 책을 만들고 있으며, 서울시는 최근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느린 학습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간단한 조리 방법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에 관한 안내를 읽기 쉬운 정보로 담아 배포하고 있다. 또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을 만들어 독서 교육을 하거나, 소리 내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많아지고 또 널리 알려져서 80만명의 느린 학습자들이 유별난 부모의 절실한 헌신이 아니더라도 공교육 안에서 느린 학습자들의 속도와 눈높이에 맞춘 교육과 지원을 받고, 또래와 주변의 기다림과 이해 속에서 성장하여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