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유행한 놀이 중 ‘밸런스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쪽도 별로인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떤 차악(次惡)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게임이다. “월 200만원 버는 백수 vs 월 500만원 버는 직장인” 같은 단순한 선택지에서부터, “소음 공해 vs 송해 고음” 같은 언어 유희를 이용한 선택지도 있다. “안 닫히는 방문 vs 여는 데 10분씩 걸리는 방문”, “무 없이 치킨 먹기 vs 케첩 없이 감자튀김 먹기” 등 생활 속 다양한 딜레마 상황을 활용한 놀이다.
김동식 작가의 신작 ‘밸런스 게임’은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지 앞에 선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장장 10권으로 이어진 ‘김동식 소설집’의 마지막 권이다. 2017년 단편소설집 3권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한꺼번에 내놓으며 등장했던 작가의 4년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책이다. 이로써 ‘양심 고백’,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 ‘살인자의 정석’,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문어’, ‘밸런스 게임’으로 이어진 ‘김동식 월드’의 한 챕터가 완결됐다.
김 작가는 2016년 5월부터 인터넷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 게시판에 쓰기 시작한 짧은 글을 모아 데뷔했다. 당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 10년간 성수동에서 주물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작가의 이력이 화제가 됐다. 그때만 해도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의 독특한 소설집이라는 소개가 소설 자체보다 더 큰 관심거리였다.
당시 인터뷰에서 “작가라는 호칭은 어색하지만, 컴퓨터에 아이디어 메모처럼 저장된 게 100개 정도 된다”며 멋쩍게 웃던 그는 이후에도 왕성한 창작력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렇게 4년간 무려 900여편의 ‘김동식표’ 이야기가 모였고 10권의 책으로 완성됐다. SF 판타지와 스릴러, 미스터리와 로맨스 등 장르를 넘나들고 각 이야기의 분량도 제각각이다. 과연 이걸 ‘단편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 갸웃하게 만드는 작품도 많지만, 바로 그 지점이 ‘김동식 월드’의 정체성이 됐다.
밸런스 게임
- 김동식 지음
- 요다 발행
- 264쪽
- 1만3,000원
무엇보다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김동식만의 사고실험은 그의 전매특허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인간이 겪는 딜레마를 통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질문한다. ‘밸런스 게임’에 실린 ‘서울 안에서 100억? 서울 밖에서 10억?’이라는 꼭지는 밸런스 게임이라는 틀을 빌려 서울공화국 한국의 욕망을 꼬집는다. 영원히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신 100억원을 받거나, 영원히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10억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각각의 다른 제안을 받아 든 두 남성의 각기 다른 삶을 그린다. 이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데뷔 때만 해도 “가방 끈이 짧아서” 초보적인 맞춤법도 틀리고, 책을 읽은 적도 글을 써본 적도 없으니 글을 어떻게 쓰고 구성해야 할지 몰랐다는 그는, 이제 1년에 강연을 200회 다니는 전업작가가 됐다. 단순한 요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인간의 이중성, 사회의 부조리, 욕망과 도덕의 경계, 존엄의 가치 등 그가 900여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다. 작품별 논제를 독서토론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김동식 소설집으로 토론하기’라는 책이 따로 나올 정도다. 이제 ‘김동식 소설집’은 마무리되지만, 이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꾼이 펼쳐나갈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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