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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세대 전쟁의 서막

입력
2021.03.03 18:04
수정
2021.03.03 18: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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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이 시행되면 복지 제도 타격
비정규직 근로자·젊은 세대는 혜택
제도 시행시 정치적 갈등 커질 수 있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3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경기도 국회의원 초청 정책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경기지사가 3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경기도 국회의원 초청 정책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서 기본소득의 분배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모델이 흥미로웠다. 소득 80만원의 A, 20만원 B와 소득이 제로인 C라는 세 사람을 가정한 경우다. A와 B가 세금을 각각 8만원과 2만원을 내 C에게 10만원을 주는 선별적 복지 정책을 실시하면 A, B, C의 소득은 각각 72만원, 18만원, 10만원이 된다.

반면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 A와 B로부터 각각 24만원과 6만원을 거둔 뒤 이를 10만원씩 모두에게 나눠주면 A, B, C의 소득은 66만원, 24만원, 10만원이 된다. 용 의원은 “부의 재분배와 정책 수용성 측면에서 어느 제도가 더 공정하고 유권자가 더 많이 지지할까요”라고 반문했다.

그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모델은 용 의원이 설명하지 않은 기본소득의 두 가지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①기본소득이 효과를 보려면 선별적 복지에 적용했던 세금(10%)을 3배(30%)나 올려야 하고 ②그 혜택이 고스란히 B에게만 돌아간다는 점이다. 세금을 2배만 올려 기본소득을 시행하면 A, B, C의 소득은 각각 70만6,000원, 22만6,000원, 6만6,000원으로 가장 가난한 C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는 대규모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시행하면 최저 소득계층인 C가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진보진영 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가 강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가뜩이나 저부담·저복지의 한국 복지제도 자체가 기본소득이란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상적이고 재원 마련 없이 현실화하면 파괴적인 기본소득은 어찌 보면 몽유병에 가깝다. 그런데도 대선 레이스 1위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을 최대 브랜드로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포퓰리즘적 매표 행위로 봐야 할까.

눈여겨볼 대목은 기본소득 시행 시 어찌됐든 B는 혜택을 본다는 점이다. 이들은 바로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에 노출돼 있는 특수고용직이나 프리랜서 등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불리는 노동자들이다. 세대 측면에서 보면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다 차별적 한국 고용 시장에서 안정적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젊은 세대다.

이들에게 현행 복지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다. 실업급여는 정규직의 중장년 근로자에게 유리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능력이 없는 장년과 노년층을 위한 제도다. 국민연금은 아예 후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기본소득 시행 시 피해를 입는 C는 기성 세대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사실 현재의 사회안전망이 지속 가능하려면 왕성한 근로 능력을 지닌 청년들이 고용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제가 점차 무너지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들에겐 현 복지제도마저 선별이 아니라 차별로 다가올 수 있다.

정치를 ‘갈등의 사회화’로 보는 샤츠 슈나이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지사는 정치 영역에서 배제돼 있던 프레카리아트를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정치의 정수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가 성남시장 시절 시행한 청년배당도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기본소득론의 권위자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21세기 기본소득’이란 책에서 기본소득이 반대에 부딪히는 상황을 고려해 “뒷문을 통해 슬며시 들여와 모두가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경로를 넌지시 제시했다. 기본소득이 어떤 형태로든 일단 시행되면 자체 동력을 통해 정치적 몸집을 키울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는 세대 전쟁의 서막일지 모른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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