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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넘어진 땅 짚고 일어설 수밖에” 아버지 앞세워, 신경숙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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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넘어진 땅 짚고 일어설 수밖에” 아버지 앞세워, 신경숙이 돌아왔다

입력
2021.03.03 21:00
수정
2021.03.17 12:4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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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가 3일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창비 제공

신경숙 작가가 3일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창비 제공

“젊은 날의 제가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발등에 찍힌 쇠스랑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그동안 제 작품을 따라 읽어준 독자분들을 생각하면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듯 가슴이 미어집니다. 다시 한번, 제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과거의 제 허물과 불찰을 무겁게 등에 지고서 새 작품을 써 나가겠습니다.”

신경숙의 새 소설은, 그가 바라는 대로 독자들로부터 용서를 대신 구해줄 수 있을까. 2015년 표절사태로 독자 곁을 떠났던 신 작가가 2일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출간하며 공식 복귀했다. 2013년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후 8년만의 신간이다.

3일 신작 출간을 기념해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신 작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넘어진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고, 그것이 나에게는 작품 쓰는 일”이라며 복귀의 소회를 밝혔다. 표절파문 이후 작가가 공식 석상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신 작가는 지난 2015년 그의 작품 여럿에 표절 의혹이 불거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절필 요구가 빗발치는 등 비판이 거세지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내내 침묵하던 작가는 지난 2019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중편소설 ‘배에 실린 것은 강을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며 활동 재개를 알렸다. 함께 낸 입장문에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쓰며 표절을 사실상 처음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

  • 신경숙 지음
  • 창비 발행
  • 424쪽
  • 1만4,000원

이어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창작과비평 웹매거진에서 주 2회씩 장편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이번에 출간된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당시 연재하던 것을 엮은 것이다. 신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아무 이름 없이 한 세상을 살다 간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신경숙의 헌사”라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전형적인 신경숙표 가족 소설이다. 엄마가 입원하자 고향 집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만나러 간 화자가,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며 그의 지난 삶을 들여다보는 구성이다. 소설 속 화자가 ‘겨울 우화’라는 중편소설로 등단한 소설가라는 점, 고향인 J시가 신 작가의 고향인 ‘정읍시’를 의미한다는 점 등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다분히 녹아 들어 있다.

신 작가가 작품 후기에서 직접 “‘엄마를 부탁해’ 를 출간한 후 많은 분에게 아버지에 대한 작품을 쓸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여러모로 그의 대표작인 ‘엄마를 부탁해’와 쌍둥이 같은 소설이기도 하다. ‘엄마를 부탁해’가 큰딸, 장남, 아빠, 엄마 등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시점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를 그려냈다면, ‘아버지에게 갔었어’ 역시 장남, 친구, 조카 등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아버지의 인생을 복원해낸다.

작가 특유의 최루성 문장이 곳곳에 포진돼 있어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다, 400쪽이 넘는 분량에 한국전쟁과 4ㆍ19혁명, 80년대 소몰이 시위와 중동 이주노동 등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을 적절히 녹여낸 데서 작가의 절치부심이 느껴진다.

신경숙 작가가 3일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창비 제공

신경숙 작가가 3일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창비 제공

신작 출간을 둘러싼 독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복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처음 표절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창비 측에서 신 작가를 두둔하는 성명을 내면서 논란이 문단권력 논쟁으로까지 번졌던 만큼, 다시금 창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복귀하는 모습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신 작가나 창비 측은 ‘표절’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거나 당시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신 작가는 다만 “문학이 내 삶의 알리바이 같은 것이어서, 하고 안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심경을 갈음했다.

반면, 한때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던 만큼 그의 신작이 기대된다는 독자들도 있다. 사전 서평단 모집에도 1,000명 넘는 독자가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작가는 이날 마지막으로 이렇게 전했다. “독자분들은 저에게는 대자연과 같은 의미입니다. ‘아버지를 만났어’가 오랫동안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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