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원작과 다른 결말… '파우스트 엔딩'에는 퍼펫이 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원작과 다른 결말… '파우스트 엔딩'에는 퍼펫이 있다

입력
2021.03.03 15:48
수정
2021.03.03 16:21
21면
0 0

국립극단,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서 공연

연극 '파우스트 엔딩'에서 주인공 파우스트(김성녀 분)는 원작과 달리 구원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향한다. 이때 파우스트와 함께하는 존재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들개들이다. 국립극단 제공

연극 '파우스트 엔딩'에서 주인공 파우스트(김성녀 분)는 원작과 달리 구원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향한다. 이때 파우스트와 함께하는 존재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들개들이다. 국립극단 제공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일생을 바쳐 쓴 희곡 '파우스트'의 결말(엔딩)에 주목했다. 지난달 26일 개막한 국립극단의 올해 첫 작품 제목으로 '파우스트 엔딩'이 지어진 이유다. "파우스트적 엔딩을 경계하며" 원작을 재창작한 조광화 연출 겸 작가의 기획의도가 반영됐다.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원작 주제를 계승하되, 결말을 비틀었다. 실제로 극은 악마 메피스토와 영혼의 계약을 맺은 노학자 파우스트가 욕망과 번뇌 끝에 결국 지옥으로 간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신으로부터 구원받는 원작과 180도 다른 전개다.

그래서 극의 절정은 맨 끝에 자리잡는다. 어두컴컴한 무대 위에서 파우스트는 스스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종착지는 지옥이다. 이때 파우스트는 혼자가 아니다. 새까만 들개 형상의 '퍼펫(인형)'들이 그를 에워싼다. 극의 마침표를 알리는 암전이 이뤄지고 파우스트는 소멸하지만, 다섯 마리 들개의 눈동자는 빨갛게 빛나며 어둠 속에서도 관객을 응시한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하는 파우스트의 지옥행 외침을 눈빛으로 되새김질하는 듯하다.


'파우스트 엔딩'에 등장하는 들개 등 퍼펫은 배우 두 명이 조작하며 연출된다. 국립극단 제공

'파우스트 엔딩'에 등장하는 들개 등 퍼펫은 배우 두 명이 조작하며 연출된다. 국립극단 제공


기본적으로 극을 이끄는 주체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다. 각 역할을 맡은 배우 김성녀와 박완규의 열연에 호평이 넘친다. 그런데 인간 배우들 이상으로 관객 뇌리에 각인된 존재는 '퍼펫'이다. 등장 시간으로만 보면 거의 주연급이다. 연극에서 '퍼펫'은 인간이 아닌 인형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파우스트 엔딩'에는 다양한 퍼펫이 나온다. 저승사자를 상징하는 '들개'부터, '완전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학자들의 그릇된 신념으로 탄생한 '호문쿨루스' 등. 각각은 소품 차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엄연히 배우로서 기능한다. 특히 하이에나를 본따 제작된 들개 악령들은 원작에는 없는 개념이다.


'파우스트 엔딩'에 나오는 퍼펫을 만든 문수호 디자이너는 "인형극이 발달한 체코 등 유럽에서는 연극에서 퍼펫이 인간과 대등한 배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 디자이너 제공

'파우스트 엔딩'에 나오는 퍼펫을 만든 문수호 디자이너는 "인형극이 발달한 체코 등 유럽에서는 연극에서 퍼펫이 인간과 대등한 배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 디자이너 제공


높이 2m에 무게가 6㎏에 달하는 퍼펫들은 애초부터 배우 두 명이 조작하도록 제작됐다. 나무와 가죽, 천 등으로 만들어졌다. 한 사람이 인형 앞쪽을, 다른 사람이 뒤쪽을 들고 조작하는 방식이다. 퍼펫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나타내려면 두 배우의 호흡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파우스트 엔딩'에 등장하는 퍼펫을 제작한 문수호 디자이너는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퍼펫을 적극 활용한 극이 드물다 보니, 이번 작품에서 퍼펫을 처음 접하는 배우도 많았다"며 "무대용 퍼펫과 연습용 퍼펫을 따로 만들어 배우들이 익숙해지는 시간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파우스트 엔딩'에 등장하는 퍼펫 '호문쿨루스'의 스케치.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불완전한 존재로, 인간의 비뚤어진 이성과 욕망을 상징한다. 국립극단 제공

'파우스트 엔딩'에 등장하는 퍼펫 '호문쿨루스'의 스케치.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불완전한 존재로, 인간의 비뚤어진 이성과 욕망을 상징한다. 국립극단 제공


극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인상의 퍼펫은 '호문쿨루스'다. 어린 아이를 연금술로 개조한 존재인데, 파우스트의 심오한 질문에 척척 대답할 정도로 지혜롭지만 외모는 '그로테스크'한 괴물이다. 변질된 인간의 이성과 인류의 종말을 함축한다. '호문쿨루스'의 존재 덕분에 극은 공상과학(SF)물 느낌마저 든다. 문 디자이너는 "너무 무섭지도, 가볍지도 않은 존재감을 표현하느라 가장 고민했던 퍼펫"이라며 "무대 위 퍼펫들은 비록 배우가 대신 목소리를 내지만, 그 자체가 캐릭터를 가진 독립된 배우"라고 말했다. '파우스트 엔딩'은 28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관람 가능하다.

장재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