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할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는 내용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 비준되면서 국내 노동권이 국제사회 기준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한-EU FTA(자유무역협정) 관련 분쟁 같은 통상 분야 우려도 줄어들 전망이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 29호(강제 또는 의무노동에 관한 협약)와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가 의결됐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 지 30년 만이다.
ILO 핵심협약은 ILO가 노동권의 기본 원칙을 집약한 협약으로, 모두 8개가 있다. 이전까지 한국은 이 중 4개만 비준했는데, 이날 3개를 추가하며 8개 중 총 7개 핵심협약에 비준하게 됐다. 정부가 ILO에 핵심협약 비준서를 기탁하면 1년이 지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국내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기 때문에 충돌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실업자와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노조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병역법 개정 절차도 진행 중이다. 병역법 개정안은 병역판정검사에서 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 현역과 사회복무요원 중 복무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택권을 부여해 보충역이 강제 노동으로 해석될 소지를 없앴다.
한국은 이번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ILO의 187개 회원국 가운데선 146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6개 회원국 중에선 32개국이 8개 핵심협약 비준을 완료했다.
통상 리스크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에 대해 EU(유럽연합)가 문제를 제기해 최근 한-EU FTA 전문가 패널이 소집된 전례가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국익을 위해서라도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불씨도 남아 있다. 노동계는 개정한 노조법이 ILO 핵심협약에 크게 못 미친다며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개정 노조법은 여전히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의 노조 결성을 제한하는 장치를 두고, 기업별 노조 임원 자격도 해당 기업 종사자로 제한하고 있어 결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에 어긋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이로써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은 105호 1개만 남게 됐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105호는 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처벌로 강제 노동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과 상충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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