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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양심요? 폭력이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순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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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양심요? 폭력이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순 없다는 거죠"

입력
2021.02.26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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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화주의 대체복무 1호 오수환씨
병역거부 비종교적 사유 인정에도?
법원 판결 넘어야 '양심' 인정 받아
"살상무기 잡기 싫어 대체복무할 것"

대체복무를 인정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수환씨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대체복무를 인정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수환씨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평화는 누군가를 해치는 방식으로만 지켜지는 건 아니다."

24일 서울 여의도 카페에서 만난 오수환(31)씨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오씨는 지난달 22일 병무청 대체복무 심사위원회에서 대체복무 대상자로 인정 받았다. '비폭력·평화주의'를 내세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는 국내 첫 사례다.

오씨는 "군대 가고 군인 되면 살상무기를 다루고 다른 사람을 쉽고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지식과 기술을 익혀야 한다. 남을 해쳐도 된다는 사고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병무청 결정으로 현재의 징병제도가 갖는 불합리성이 일부 부각됐지만, 한편으론 신성한 병역 의무를 회피했다는 비난도 잇따랐다.

15년 전 토론 때 싹튼 평화주의 씨앗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지난해 10월 26일,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로 들어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모습. 박주영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지난해 10월 26일,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로 들어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모습. 박주영 기자

오씨는 고교 재학시절인 2006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음으로 고민했다. 윤리 수업시간에 이라크 파병 찬반 토론이 벌어졌는데,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으로까지 이야기가 확대됐다. 친구들 대부분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오씨는 자신의 생각을 선뜻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오씨는 "당시엔 모두가 반대했기 때문에 어떤 논리로 말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막연했던 병역거부 고민은 2014년 4월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을 살다 온 선배를 만나며 구체화됐다.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에 몸담으면서 평화수감자의 날(12월 1일)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5월 15일)에 징역살이 하는 수감자들을 만나 대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승인받기까지는 1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아버지 설득부터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속으로 참고 있다가도 이따금씩 '아들이 감옥 가고 전과자 되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생각을 거둘 것을 권했다. 오씨는 "아버지가 화를 많이 냈고, 그래서 참 많이 다퉜다"며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아버지도 평화를 찾으셨다"고 말했다.

세상과 싸우는 과정은 더 험난했다. 양심을 증명하기 위해 본인·부모·주변인 진술서는 물론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범죄경력회보서와 양심을 입증하기 위한 별도 서류들을 제출했고, 병무청 판단을 앞두고 심사관 5명 앞에서 면접을 봐야 했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활자로만 남아있던 헌법 19조 문구를 다시 살려내야 했다.

"불이익 감수했던 이들, 그 길 따른 것뿐"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화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 홍모씨가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화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 홍모씨가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오씨는 긴 투쟁 끝에 여호와의증인 등 종교적 이유가 아닌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처음 공인됐지만 마냥 기쁘진 않다. 2018년 4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씨는 "10년 전이었다면 일상적 관계를 생각해 신념을 밝히는 걸 고민했을 것 같다"며 "징역을 감수하고 신념을 지켜온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며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병역거부자로 인해 현역 입영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오씨는 "상비군을 60만명이나 유지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며 "다른 방식으로 군을 보완하거나 개선해야지, 인적 규모 유지가 인권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밝혔다.

오씨는 누군가를 해치는 방법을 배우고 싶지 않을 뿐 대체복무까지 반대하는 건 아니다. 현재의 대체복무제가 36개월 동안 교정시설에서 합숙해야 하기에 징벌적 성격이 있지만, 이를 회피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오씨가 병무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 받았더라도, 아직 대체복무를 할 순 없다.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병무청 심사를 인용해 무죄가 선고돼야 비로소 대체복무 대상자로 입영이 가능하다.

오씨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제기해 온 걸 알기 때문에,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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