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서아프리카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찰스 테일러는 전쟁이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되기 전 테일러는 내전을 일으켜 나라를 초토화시켰고 권력을 잡은 뒤엔 이웃나라 시에라리온의 막대한 다이아몬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현지의 반군 혁명연합전선과 손을 잡았다. 테일러를 통해 구매한 무기를 장착하고 공격에 나선 혁명연합전선은 2주도 지나지 않아 민간인 6,000여명을 학살했고 10만여명의 이재민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인구 대부분이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는 극빈국 시에라리온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찰스 테일러와 이스라엘인 무기업자 레오니드 미닌은 수천만달러를 벌어들이며 사치스러운 삶을 즐겼다.
테일러와 미닌의 사악한 전쟁놀이는 무기사업이 정치와 얼마나 밀접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무기산업이 마약산업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대부분 정부가 개입해 있는 데다 비밀의 장막에 꽁꽁 둘러싸여 있어 실체 규명이 어렵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부패 감시 비영리단체 커렵션워치의 창립자인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2011년 처음 펴낸 '어둠의 세계'에서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의 비리를 폭로한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부터 최근까지 방대한 자료를 아우르며 전쟁이 장사꾼들의 게임판으로 변해버린 참혹한 역사를 되짚고 그 산업을 주도한 인물들을 소환해 고발한다. 출간 당시 이 책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건 무기 거래와 관련한 몇몇 비리 스캔들을 파고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의 무기산업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꼼꼼히 들춰내고 있어서다.
무기산업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뿐 아니라 과도한 군비지출 증가를 유도하며 국가의 경제와 사회문제까지 악화시킨다. 남아공에선 에이즈 퇴치 관련 예산이 불필요한 무기구매 예산으로 전용되며 막대한 피해를 낳기도 했다. 무분별한 무기 공급이 폭력과 학살을 부추겨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다. 세계를 경악하게 한 르완다 대학살도 연간 예산의 70%를 무기구매에 지출한 르완다 정부와 무기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선 프랑스 정부가 손잡은 결과였다. 이처럼 세계 곳곳의 상황이 심각한데도 무기거래를 둘러싼 비리와 범죄가 좀처럼 범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은, 무기산업이 오래도록 감시와 규제, 감독에서 벗어나 있어왔다는 현실을 말해준다. 세계의 무기 산업을 주도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저자는 세계 최대 무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무기산업의 작동방식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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