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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는 왜 삭발할까?

입력
2021.02.24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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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2019년 4월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동자승 단기출가 보리수 새싹학교 삭발·수계식'. 서재훈 기자

2019년 4월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동자승 단기출가 보리수 새싹학교 삭발·수계식'. 서재훈 기자


요즘에야 주호민 작가처럼 훤칠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분들도 다수 있다. 그러나 이런 훤칠함은 아무래도 승려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헤어스타일은 과거에는 신분이나 지위 또는 결혼의 유무를 나타내곤 했다. 조선에서도 기혼 남성은 상투지만 미혼은 종종머리를 했고, 기혼 여성은 쪽 찐 머리를 하지만 미혼은 댕기 머리를 하지 않았던가? 기혼과 미혼의 혼란은 심각한 헛발질(?)의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눈에 확 띄게 대놓고 표현한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머리를 묶는 방식이 곧 신분 계급의 표지(標識)였다. 우리는 이 부분을 관모(모자)가 대신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더운 인도에서 모자는 필수 아이템이 아니었다. 해서 머리를 묶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승려는 삭발을 할까? 인도는 오늘날까지도 유전되는 뿌리 깊은 신분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카스트제도다. 이 신분제는 혈통과 관련된 태생적 가치다. 그런데 붓다는 일체의 태생적인 차별을 부정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후의 행동으로만 판단해야지, 태생적인 주어진 가치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들으면 매우 당연하고도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누가 양반과 상놈의 판단을 그 사람의 행동과 노력으로만 하자고 했다면, 그가 과연 지지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붓다는 이를 강력한 의지로 실천에 옮긴다. 이것이 바로 삭발이다.

물론 삭발로 피부색 등에 의한 신분까지 균질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불교 승단은 삭발을 통해 출가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강한 상징성을 입게 된다. 즉 신분을 넘어선 능력제의 재편, 이것이 바로 출가인 셈이다. 이러한 붓다의 관점은 당시 경쟁하던 다른 종교들보다, 새롭게 대두한 불교가 단기간에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했다.

삭발은 비구인 남성 수행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 즉 비구니도 삭발을 한다. 이는 남녀라는 성차별도 균질화하겠다는 강한 상징의 천명이다.


톤슈라를 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게티이미지뱅크

톤슈라를 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게티이미지뱅크


또 삭발에는 동일 집단을 단합시키고, 문제 있는 행동을 사전에 차단하는 기능도 있다. 중세에 천주교의 수도사들이 방탕해지자,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사도 바울의 머리에서 착안한 도넛 같은 헤어스타일인 '톤슈라(tonsura)'를 하도록 했다. 바울을 배우며 두드러진 머리모양으로 인해 함부로 행동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불교의 삭발이 평등을 위한 특수였다면, 톤슈라는 특수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다. 이런 점에서 삭발과 톤슈라는 외양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1972년 톤슈라는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금지된다. 그러나 삭발은 오늘날까지도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전통 중 하나로 유전되고 있다.

삭발의 외적인 측면에 신분에 대한 평등이 있다면, 내적으로는 외부와의 단절을 통한 내면의 집중이라는 코드가 존재한다. 삼손이 머리카락을 잘리자 힘을 잃고, 제갈량은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이 불게 하기 위해 머리를 풀어 헤친다. 이는 모두 머리카락이 외부적인 에너지와 연결됨을 나타낸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과거와의 단절 등 마음을 다잡을 때 우리는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는가! 즉 긴 머리가 연결을 상징한다면, 짧은 머리는 단절의 표상인 셈이다.

승려는 삭발을 통해 모든 연결을 끊는다. 그렇게 외부를 차단하고 오직 내면으로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본질인 동시에 삭발의 또 다른 코드다. 즉 삭발에는 '평등'과 '내적 성취'라는 두 가지 상징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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