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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언론이 부모를 범인으로… '뷰티퀸' 소녀 가족의 12년 누명

입력
2021.02.26 04:30
수정
2021.02.26 14:2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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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존버네이 램지 살해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존버네이 패트리샤 램지양 살해 사건을 다룬 미국 주간지 피플의 1997년 1월호 표지. AP 자료사진

존버네이 패트리샤 램지양 살해 사건을 다룬 미국 주간지 피플의 1997년 1월호 표지. AP 자료사진

얄궂은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이튿날이고, 선물을 보관하던 저택 지하실 빈방이었고, 거기서 소녀 시신을 찾은 이는 53세 아빠였다. 숨진 막내딸은 고작 여섯 살이었다.

처음에는 유괴인 줄 알았다. 전날 파티 기운이 식지 않은 1996년 12월 26일 오전 5시30분 미국 콜로라도주(州) 볼더 카운티. 커피를 만들러 부엌으로 가던 길이었다. 종이 석 장이 계단 바닥에 놓여 있었다. 몸값을 달라는 편지였다. 패트리샤 앤 램지(당시 40세)는 이내 딸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아침 6시 직전 911에 전화했다.

경찰은 일찍 왔고, 현장을 둘러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형사 한 명만 남았다. 예고된 시간은 오전 8~10시였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집안을 찾아보자고 형사가 제안했다. 비극은 기다리지 않았다. 온갖 ‘리틀 미스’ 대회를 휩쓸던 ‘뷰티 퀸’ 존버네이 패트리샤가 이른 오후, 아빠 존 베넷 램지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흰색 담요에 싸인 존버네이는 머리 위로 손목이 묶이고 입에는 테이프가 붙여진 상태였다. 교살에 따른 질식사로 판명됐지만, 두개골이 골절됐고 전기 충격기 쇼크 및 성적 학대 흔적도 있었다. 속옷은 피와 소변으로 얼룩졌고, 위에는 소화되지 않은 파인애플이 있었다. 성기에서는 나무조각이 나왔는데, 교살용 흉기로 쓰인 막대기의 일부였다. 소녀는 가슴 부위가 반짝이(시퀸) 별로 장식된 흰색 니트 셔츠 차림이었고, 그 해 성탄절 선물인 듯 ‘존버네이 12-25-96’가 새겨진 팔찌를 차고 있었다.

미국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친구가 2019년 7월 소셜미디어에 존버네이 램지양이 표지를 장식한 잡지 사진을 농담을 섞어 올리고 그란데가 여기에 가볍게 댓글을 달았다가 빈축을 샀다.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친구가 2019년 7월 소셜미디어에 존버네이 램지양이 표지를 장식한 잡지 사진을 농담을 섞어 올리고 그란데가 여기에 가볍게 댓글을 달았다가 빈축을 샀다. 인스타그램 캡처


정황은 부모를 범인으로 가리켜

지난달 15일 방영된 ABC방송 탐사 프로그램 ‘20/20’에서 전직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브래드 개릿은 “그 연령대 아이가 죽었다면 경향적으로 상당수 사건의 범인은 부모”라고 했다. 쌓인 유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정황은 오해할 만했다.

일단 납치범으로부터 전화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부모가 태연했다는 게 그들과 함께 연락을 기다린 형사의 증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애초 경찰이 지나쳤던 방으로 거의 수색이 시작되자마자 존이 직행한 일도 의심스러웠다. 심지어 존은 모든 걸 제자리에 두라는 자기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시신을 위층으로 옮긴 뒤 테이프를 뜯어냈다. 살인자가 존일지 모른다는 직감이 든 게 그때라고, 형사는 고백했다.

협박 편지도 이상했다. 패트리샤의 메모지에 그의 필기구로 쓰인 데다 세 쪽이나 되는 장문(長文)이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사람을 죽였거나 납치하려 준비하다 즉석에서 그렇게 긴 글을 쓰기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게다가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하는 용도로 사용된 막대기는 패트리샤의 그림 붓이었다.

11만8,000달러라는 요구 몸값 금액도 공교로웠다. 존이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보너스 액수와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느냐”고 개릿은 반문했다. 지난달 방송에서다. 부모가 용의선상에 오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런 터에 불신을 더 키운 건 부부의 비협조였다. 존은 부자였고, 동정심을 살 만한 처지에 놓였다. 납치 살해가 자작극이고 부모가 진범이라면 그들이 거짓 시나리오를 정리하기 전에 소환해 다그쳐야 했지만, 그게 간단치 않았다. 경찰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날 법했다. 딸 장례가 더 급하고, 감정이 워낙 격한 상태여서 경찰 심문에 응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건 직후 후다닥 전에 살던 애틀랜타로 가 버리더니 세밑 장례를 치르자마자 새해 첫날 거기서 CNN방송에 출연했다. “도주 중인 살인자를 찾아달라”고 울먹이는 모습이 언론플레이로 보였다.

2000년 5월 연 기자회견에서 존버네이 램지양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는 아버지 존 베넷 램지(오른쪽). 옆은 어머니인 패트리샤 앤 램지. AP 자료사진

2000년 5월 연 기자회견에서 존버네이 램지양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는 아버지 존 베넷 램지(오른쪽). 옆은 어머니인 패트리샤 앤 램지. AP 자료사진


오판 확신한 당국

동기가 애매하기는 했다. 그러나 경찰은 가족이 저지른 짓일 거라 확신했다. 정황이 근거였다. 존이 패트리샤와 재혼하기 전에 낳은 존버네이 이복 형제의 ‘알리바이’(부재증명)를 사건 석 달 뒤 재검토했고, 1997년 3월에는 패트리샤의 필적을 본격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다음달엔 기관을 바꿔 유전자(DNA) 검사를 다시 했다.

그 해 4월 19일. CNN은 볼더 지방 검사의 말을 인용해 존과 패트리샤가 핵심 용의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패트리샤가 30일, 6시간 반에 걸친 장시간 심문을 받는다. 수사 당국과 부부의 갈등이 깊어졌고, 부부는 지역 언론에 억울을 토로했다. 1998년 6월 당국은 사건 때 9살이던 존버네이의 오빠 버크 해밀턴도 불러 조사했다.

존이 딸을 성폭행하다 실수로 죽였고 이를 덮으려 패트리샤가 조력했다는 가설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당국의 우선 표적은 패트리샤였다. 난소암을 치료하다 우울증에 걸린 그가 우발적으로 딸을 해쳤다거나 더 많은 대회 타이틀을 따내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침대에 오줌을 싼 딸이 야속해 홧김에 죽였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그럴싸하게 퍼진 데에는 경찰이 한몫했다. 버크는 시신 뱃속 파인애플과 연결됐는데 제 것을 먹고 도망친 동생을 손전등으로 때렸다는 추리였다.

그러나 사실, 증거는 집밖을 가리켰다. 침입자 가설을 고수한 인물은 검찰 수사관 루 스미트였다. 침입설이 부정된 건 깨진 지하실 창문이 좁고 거미줄이 그대로였다는 이유였는데, 사건 뒤 사진 촬영 때까지 거미줄이 복원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고 그는 주장했고 통과 못할 정도의 창 크기가 아니라는 건 시연으로 입증했다. 가족 아무도 신지 않는 브랜드의 부츠 자국이 현장에 남아 있었고, 전기 충격기를 가족 중 누가 쓸 이유도 없었다. 꼬투리가 된 부부의 격렬한 부인은 오히려 무고 증명일 수 있다. 물론 부모가 아이를 죽일 수 있지만 그들은 아니라고 스미트는 믿었고 당국이 ‘증거’ 찾기에 소홀하다 여긴 끝에 1998년 8월 사의를 표시했다.

그 무렵부터 1년여간 기소를 위한 대배심 조사까지 진행됐지만 수사 당국은 빈손이었다. 1999년 10월 결국 검사가 부부를 기소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결과론이지만 상당수 미제 사건은 초동 수사 부실 탓이 크고 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은 금세 오염됐고, 오판한 당국은 그나마 남은 증거들마저 잃고 말았다.

2006년 미국 조지아주 마리에타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와 포옹하고 있는 존버네이 램지양의 오빠 버크 해밀턴 램지. AP 자료사진

2006년 미국 조지아주 마리에타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와 포옹하고 있는 존버네이 램지양의 오빠 버크 해밀턴 램지. AP 자료사진


누명은 벗었지만…

죽은 듯하던 사건이 활기를 찾은 건 10주기 때였다. 2006년 8월 태국 방콕에서 교사 출신 미국인 존 마크 카(당시 41세)가 존버네이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존버네이를 사랑했고, 그가 숨진 건 사고였다. 마약을 한 뒤 성관계를 가졌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허위 자백이었다. DNA가 같지 않았고, 체포 열흘 만에 검찰은 기소를 포기했다. 과대망상 환자라는 분석이다.

2019년 1월에도 실토가 나왔다. 사건 때 이웃 주민이었던 게리 올리바(당시 32세). 아동성범죄가 인정돼 수감 중이던 그 무렵 고교 동창생에게 보낸 편지에 “사고로 존버네이가 죽었는데, 내 실수였다”고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첫 고백이 아니었고, 이미 수사 초기, 유력 용의자로 지목돼 연행됐다 DNA 불일치로 풀려나기도 했다.

당초 석연치 않은 우연들이 없지 않았다. 사건 이틀 전 램지 저택 성탄 파티에서 산타클로스로 분장했던 이웃 주민 빌 맥레이놀즈의 경우 딱 22년 전인 74년 12월 26일 9살이던 딸이 성범죄자에 의해 납치된 적이 있었고, 그의 아내는 76년 여아가 성폭행ㆍ고문을 당한 뒤 살해돼 지하실에서 발견된다는 이야기의 연극 극본을 썼었다. 존버네이 사건 직후 자살한 전기 기사 마이클 헬고스는 현장에 발자국이 찍힌 부츠와 전기 충격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DNA 덕에 혐의가 풀렸다.

사건을 미궁으로 밀어넣은 DNA지만 그 과학이 없었더라면 존 부부와 버크가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제외될 수 없었다. 2008년 당시 볼더 지방 검사 메리 레이시가 가족의 누명을 벗겨준 건 ‘터치 DNA’라는 첨단 기법을 적용해 본 뒤였다. 용의자가 만진 물품에서까지 DNA를 채취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방법은 추적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는 동력이다. 존버네이의 이복 오빠인 존 앤드루는 2010년 숨진 전 수사관 스미트가 남긴 용의자 20명 목록을 토대로 최종 한 명까지 추릴 계획이다.

사건이 엉뚱한 길로 흐르고 애먼 유족이 고통 받은 데에는 선정성을 추구하는 언론의 책임도 작지 않다. 버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2019년 거액 배상금에 합의한 CBS방송 사례는 작년 조국 전 법무장관이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혹독한 유명세를 부른 건 결국 대리 만족에 갈급한 미인대회 수상자 출신 엄마의 욕망이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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