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가나 난민소녀 "도움으로 얻은 기회...통역사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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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내기 가나 난민소녀 "도움으로 얻은 기회...통역사 꿈 꾼다"

입력
2021.02.24 10:00
수정
2021.02.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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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21학번 학부 최초 난민 입학
대학 직원들 십시일반 기숙사비 지원
"가족들 한국어 통역해주며 통역사 꿈"

그레이셔스가 막내 동생을 돌보고 있는 모습. 조진섭 사진가 제공

"인생의 첫 발걸음, 많은 분들이 도와준 만큼 기회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난민소녀가 21학번 새내기 대학생이 됐다. 난민으론 성공회대 학부 최초로 올해 수시모집을 통해 인문융합자율학부에 입학한 그레이셔스(19)의 이야기다. 어린 나이에 어떤 풍파를 겪은 탓일까. 장차 영어학을 전공해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그레이셔스의 유창한 한국어 구사능력을 보면 의젓함이 묻어났다.

가나 난민촌에서 태어난 그레이셔스는 10세였던 2012년 겨울 모친과 함께 한국에 왔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출신 모친은 잦은 내전과 '여성 할례'를 피해 가나로 피난했다. 가나에서 만난 남성과 결혼해 그레이셔스를 낳았지만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에 아이의 눈은 고름이 나올 정도로 나빠졌고, 설상가상 난민촌에서도 할례가 시작됐다.

그레이셔스의 모친은 남편과 이혼 후 더 나은 삶을 위해 살림을 처분하고 돈을 빌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고향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경기 동두천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듬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국 학교에 다니게 된 그레이셔스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식당 서빙, 전단지 배포, 편의점 점원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고된 아르바이트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 시선이었다. 그는 23일 본보 인터뷰에서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 보니 시선이 익숙지 않았고 험담이라도 들으면 엄마한테 울면서 '슬프고 서운하다'고 토로했다"며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몰랐는데 지금은 다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그레이셔스는 더욱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모친은 물론 한국에 와서 생긴 새아버지와 동생들까지, 가족 중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레이셔스 뿐이다. 그는 "일상에서도 가족들에게 통역해주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에선 영어 시사 토론반 활동을 하며 꿈을 키워갔다.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한 후 어려운 형편에 입학은 못 할 것으로 체념했지만, 그레이셔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손길을 내밀었다. 입학금은 한국인 지인의 도움을 받고, 첫 학기 등록금은 한국어능력 우수학생에게 주는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기숙사비는 성공회대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100여만원으로 납부했다.

그레이셔스는 개강 전 식당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할 예정이다.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다. 그는 "내가 그리 큰 사람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본 적도 없는 분들이 이렇게 많이 도와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기회가 주어진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레이셔스 가족은 시민단체 도움으로 난민 신청을 해서 2017년 대법원에서 난민 인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허가해준 것은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인도적 체류 G1 비자로, 여전히 생계와 추방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레이셔스는 "대학생이 돼 기쁘지만 한편으론 가족들 비자가 갱신이 안 될 수도 있어 불안하다"며 "미래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졸업까지 잘 해내고 싶다"고 밝혔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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