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시장, 반도체보다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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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시장, 반도체보다 커진다

입력
2021.03.01 20:00
수정
2021.03.0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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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2월 23일 충북 청주시 과학산업단지 안에 자리 잡은 LG에너지솔루션(지난해 12월 LG화학에서 물적 분할) 오창공장. 축구장 46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부지(33만㎡) 위에 세워진 이곳이 국내에서 가장 큰 배터리 생산기지다. 현대 쏘나타 하이브리드차 1만대에 들어갈 배터리를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다. 지난해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이곳으로 구광모 LG 회장을 찾아와 첫 단독 회동을 한 배경이다. 극판 조립부터 배터리 셀과 모듈, 팩 제조까지 전기차 배터리 전 공정이 전자동 일관 생산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직원 수는 4,190여명이나 된다.


LG 국내 최대 배터리 공장

이처럼 규모가 큰데도 현장은 전 세계 자동차 고객사의 주문이 밀려 24시간 풀가동되고 있었다. 수주 잔고는 이미 150조원을 넘었다. 중국을 빼면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선 33%의 점유율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사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지난해 500억달러를 넘긴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1,600억달러로 성장, 메모리반도체 시장(1,490억달러)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2030년엔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도 추월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이 폐배터리를 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와 연결된 급속 충전기를 통해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오창=왕태석 선임기자

이미 전날 방문자 사전 등록을 하고 보안 동영상까지 시청한 뒤 방문 승인을 받은 상태였지만 정문에선 다시 마스크 착용 서약서를 내고 체온을 잰 뒤 스마트폰에 보안 스티커까지 붙여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이자 정보 유출 등을 막기 위해서다. LG의 배터리 특허 수는 2만3,600개를 넘어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많다.

정문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소형 전지 1, 2, 3동과 자동차 전지 1, 2동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소형 전지는 주로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다. LG화학도 처음엔 주로 소형 전지를 만들다 10여년 전부턴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로 중심을 옮겼다. LG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2023년 현재의 2배(총 260GWh)로 늘어난다.


쏟아질 전기차 폐배터리...신사업 기회

정회국 LG에너지솔루션 ESS전지리유즈 팀장. 오창=왕태석 선임기자

LG에너지솔루션의 고민은 이미 그 이후를 향하고 있다. 정문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자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이 쭉 늘어선 가운데 코나 전기차가 급속 충전되고 있었다. 완속 충전기로 8시간 가까이 걸리는 충전 시간을 급속 충전기는 20분으로 줄일 수 있다. 급속 충전기의 전기는 어디서 온 걸까. 바로 옆에 컨테이너박스 절반 크기의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가 세워져 있었다. 에너지를 저장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ESS는 용량이 매우 큰 배터리로, 작은 발전소나 마찬가지다. 배터리를 대량으로 쌓아 올린 뒤 전력변환장치와 운영시스템을 연결해 구성한다. 실제로 ESS 문을 열어보니 안엔 사과 박스 크기의 폐배터리 4대가 채워져 있었다. SM3 전기 택시 4대에 탑재돼 쓰이다 폐차 후 버려진 배터리다. 폐배터리이지만 성능이 신품의 80% 수준은 돼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를 ESS용 배터리로 전환해 전기차 배터리를 급속 충전하는 데 활용하는 방안을 실증 연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아이오닉5, 2000만원대에 구매 가능

LG에너지솔루션이 폐배터리 재사용(Reuse)에 주목하는 건 환경 오염을 줄이고 배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전기차 가격을 크게 낮출 답도 숨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30% 안팎을 차지한다. 폐차되는 전기차의 배터리를 재사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이 확립되면 소비자는 전기차를 구입할 때 배터리는 뺀 채 차체만 사는 방식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 경우 배터리는 대여(렌털) 사업자 소유가 되는데, 소비자로부터 사용료를 받다 차가 폐차될 땐 배터리를 회수해 ESS용 배터리로 팔면 된다. 최근 공개된 현대차 아이오닉5는 보조금과 개별소비세 혜택 등을 감안하면 3,0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만약 폐배터리 재사용 비즈니스모델을 활용하면 2,000만원대 구매도 가능하다. 2월 18일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기술연구소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현대글로비스 KST모빌리티(마카롱택시)가 '전기 택시 배터리 대여 실증사업 업무 제휴 협약'을 체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회국 LG에너지솔루션 ESS전지리유즈 팀장은 “배터리 제조를 통한 납품을 넘어 배터리 전체 라이프사이클 관점에서 생산부터 폐기까지 고객이 어떤 단계에 있든지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 ESS 시장도 최강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FP 연합뉴스

폐배터리 재사용은 신사업 기회도 창출한다. 블룸버그신에너지파이낸스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2030년 2,600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이런 전기차의 성장 속도에 정비례해 10년 후부터는 전기차 폐배터리도 쏟아지게 된다. 이를 ESS용 배터리로 재사용할 수 있다면 ESS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사실 전기차 업체로 잘 알려진 테슬라는 ESS 시장에서도 최강자가 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ESS 제품인 파워월, 파워팩, 메가팩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인 양극재

26일 경북 포항시 영일만일반산업단지 안 배터리 집적단지인 에코프로 캠퍼스. 길이가 1,000m에 달하는 부지 곳곳에선 높이가 50m에 달하는 철제 구조물이 한창 올라가고 있었다.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갈 양극재를 제조하는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이엠 공장이다. 배터리는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의 4총사로 구성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게 양극재다. 전기를 만드는 원천으로 배터리의 용량(사용시간이나 주행거리)과 특성을 결정한다. 원가 비중에서 가장 큰 부분(40% 안팎)도 차지한다. 에코프로비엠은 이런 양극소재 전문기업이다. 에코프로이엠은 삼성SDI와의 합작사로 삼성에 공급할 양극재를 생산하게 된다. 에코프로는 현재 6만톤인 연간 양극재 생산량을 2024년 18만톤까지 늘리기 위해 총 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규봉 에코프로이엠 상무는 "연간 200만대의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갈 양극재를 만들 것"이라며 "폐배터리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재활용 사업부터 양극재 제품까지 밸류체인을 넓혀 가겠다"고 말했다.

삼성SDI에 공급할 양극재를 생산할 에코프로이엠의 포항공장 건설 현장.

양극재는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에 리튬을 조합해 만든다. 최적의 비율을 찾아내는 게 경쟁력인데 최근엔 니켈 함량이 80% 이상인 하이니켈 양극재가 각광받고 있다. 가격이 비싼 코발트 비중은 줄이고 에너지 밀도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로우니켈 양극재에 집중할 때 에코프로비엠은 하이니켈 양극재에 승부수를 걸었다. 하이니켈 양극재 기업으론 글로벌 정상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중국과 가장 큰 격차, 불순물 관리

이미 가동중인 에코프로비엠 5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L자 카트 모양의 무인 운반 로봇인 AGV(Automated Guided Vehicle)가 양극재를 출하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양극재는 대부분 금속 파우더로 만들어지는데 중력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 배관으로 떨어지도록 생산 공정은 꼭대기층에서 시작된다. 도자기를 굽듯 양극재 재료를 800도의 고온으로 가공 처리하는 소성로(爐) 본체도 눈길을 끌었다. 길이가 무려 50m 이상으로 세계 최대 소성 라인이다.

길이 60m로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 소성 라인.

양극재 포장 전 이물질을 전자석과 필터 등으로 잡아내는 공정 관리도 차별화한 경쟁력이다. 반도체가 파티클(먼지)과의 전쟁이라면 2차 전지는 금속 불순물 관리가 수율과 안전성 확보를 좌우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기업의 격차가 큰 영역이다. 이물질이 많으면 자칫 화재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배터리 전담 부서도 없는 배터리 강국

이처럼 미래 성장성이 크지만 우수 인력 확보는 숙제다. 김병훈 에코프로비엠 사장은 “올해 300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인데 지방에 소재한 탓에 정작 필요한 인력은 잘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에코프로비엠 포항공장.

반도체보다 더 커질 유망 산업임에도 정작 산업통상자원부엔 배터리 산업을 총괄하는 담당 과가 따로 없다는 것도 업계 고충이다. 구희진 한국전지산업협회 본부장은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으로 앞으론 배터리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우리나라엔 전담 과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배터리 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과 중요성을 감안하면 적어도 산업통상자원부에 배터리과나 팀을 두고 비전 제시와 장기 전략 모색, 포괄적인 정책 추진 등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오창·포항 =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k.co.kr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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