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부 출범 뒤 美와 더불어 강경 노선
홍콩 탄압 中ㆍ쿠데타 미얀마에도 한목소리
유럽연합(EU)이 새로 만든 ‘미국식 인권법’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잡아 가둔 러시아에 처음 적용한다.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금융ㆍ여행 관련 제재를 내릴 방침이다.
2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27개 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를 구속 수감한 데 대응해 고위 러시아 관리 4명을 제재하기로 합의했다. 공식 승인은 내달 초 이뤄질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 위원장과 이고리 크라스노프 검찰총장, 빅토르 졸로토프 국가근위대 대장, 알렉산드르 칼라시니코프 연방교정국 책임자 등을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에겐 자산 동결 및 입국 금지 조치가 취해진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ㆍ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그(나발니)의 체포, 선고, 박해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이 제재 대상이라며 EU가 새로 도입한 인권 제재 제도가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재가 성사되면 EU의 새 인권 제재 틀이 처음 사용되는 사례인데, 이는 미국의 ‘마그니츠키 인권책임법’과 유사하다. 2012년 도입된 마그니츠키법은 러시아 권력층의 부패를 폭로했다가 체포돼 2009년 옥중 사망한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변호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권 침해에 연루된 개인 또는 단체에 자산 동결이나 비자 발급 제한 같은 제재를 가한다. 영국, 캐나다에 이어 EU도 비슷한 법을 만들어 지난해 12월 시행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외무부가 이날 성명을 통해 “터무니없는 이유로 러시아 시민에 대해 불법 제재를 마련하겠다는 EU 외무장관들의 결정은 실망스럽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나발니는 지난해 8월 항공기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독일에서 치료를 받은 뒤 지난달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귀국 직후 체포됐고 법원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취소하며 수감됐다.
EU는 중국에도 강경한 인권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EU 외무장관들이 중국의 대(對)홍콩 통제 강화에 맞서는 대응 조치를 마련하자는 데에도 동의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해당 조치에는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과의 접촉 확대나 EU 인권특별대표의 홍콩 파견 등이 포함된다. 아직 미국처럼 홍콩ㆍ중국 관리를 상대로 제재를 가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게 EU 측 설명이다.
WSJ는 “EU가 독립적 외교 정책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대러시아ㆍ중국 현안에 대해서는 미국의 강경 노선과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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