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통증으로 불참하겠다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벽안의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도 머리를 숙였다. 국내 굴지의 건설·제조·택배업 9개사(포스코, 포스코건설, 현대중공업, LG디스플레이, GS건설, 현대건설,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한 자리에서 산업재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사망자만 882명에 달하는 산재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는 기업인은 아무도 없었다. 22일 국회 차원에서 처음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 얘기다.
'대책' 없는 청문회...산재 기초 인식부터 달랐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국회와 기업 대표 간 산재 원인과 현황에 대한 인식 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우선 산재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한 진단부터 달랐다.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9개사 기업 대표에게 공통으로 요구한 건 하청·협력 업체의 안전관리 강화 방안이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문회를 앞두고 고용노동부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문회 출석 대상인 9개 회사에서 5년간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103명이었고, 이중 하청업체 노동자는 85명이었다.
그러나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 대표들은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대한 심각성의 정도가 크지 않았다. 산재 사고에 대해 5차례 이상 허리숙여 사과한 최정우 회장은 "포스코 현장은 위험 여부에 따라서 외주화를 결정하지 않는다"면서 "쇳물과 가스같은 중요한 위험은 직영이 직접 수행한다"고만 했다. '협력사 안전관리 예산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지적에도 최 회장은 "가장 위험한 요소는 노후화된 시설"이라고만 답했다.
기업 대표들은 산재 발생 원인을 구조적 요인에서 찾기 보다, '안전불감증' 등을 언급하며 피해자인 노동자 탓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는 "산재가 안전하지 않은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 잘 일어났다"고 말했다가 의원들에게 집중 질타를 받았다. "(주요 건설사들의) 국내 건설현장 산재는 증가했는데 해외에서 감소했다"는 지적에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는 "안전 인식과 안전 문화의 차이"라면서 구조적 문제와는 거리가 있는 답변을 했다.
미흡한 자료 제출에 '조작' 의혹까지
답변 태도 뿐 아니라 일부 대기업 대표들은 의원들의 요구 자료 자체도 불성실한 모습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허리 통증을 이유로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가 끝내 참석한 최정우 회장을 향해선 "롤러에 압착돼 죽으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겠느나"(김웅 국민의힘 의원)는 비판까지 나왔다. 지난 8일 포스코 협력업체 직원이 컨베이어벨트 롤러 교체 작업중 기기에 끼어 숨진 사건에 대한 경각심 환기 차원이었다.
기업이 국회의 산재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무시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비정규직 노동자가 과로사한 경북 칠곡 물류센터 물동량 자료를 요구했으나 쿠팡 측은 거부했다. 강 의원이 "대체 이게 어떻게 영업 비밀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으나, 쿠팡은 끝내 자료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자료제출 조작 가능성도 제기됐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포스코가 사업장 위험요인을 자체적으로 파악해 작성하는 2018~2020년도 '위험성 평가보고서'에 대해 "(포스코가) 조작된 내용을 국회에 보고할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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