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초 민정수석실 역할 구상했지만
당정청 협의보단 여당 독주 거듭 확인
역할 고민 중 '인사 패싱'에 결심 앞당겨
檢 중간간부 인사 공석 채우는 수준 전망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취임 한 달여만에 사의를 표명한 결정적 이유는 검찰개혁 추진 주체를 두고 여당 및 청와대 정무라인들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장 인사에 대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패싱’ 논란은 신 수석이 사퇴 결심을 굳히게 한 계기가 됐을 뿐 결정적 이유는 아니란 얘기다.
21일 법조계와 정치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신 수석은 올해 초 민정수석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검찰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과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에 따른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검찰개혁의 형식적 측면은 갖춰졌지만,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세부 조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검찰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칠 중대범죄수사청 설치까지 추진되자, 법조계를 포함한 지인들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면서 검찰개혁에 대한 나름의 역할을 구상했다.
신 수석은 새로 도입됐거나 논의 중인 제도들이 안착하기 위해선 검찰과 경찰, 공수처와 법원의 실무 담당자 의견을 반영한 당·정·청의 지속적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사법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여당이나 법무부 차원의 논의보다는 청와대가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신 수석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럴 경우 검찰개혁 업무의 주무부서인 청와대 민정수석실 역할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취임 직후부터 그의 구상은 어그러졌다. 여당과 청와대 정무라인에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검찰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1년 남았고, 180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은 3년 정도 역할을 더 할 수 있지 않나. 개혁 작업이 단절되지 않고 완성되려면 여당이 주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민주당이 최근 꾸린 검찰개혁특위 산하 수사기소권 완전분리 태스크포스(TF)의 움직임은 적극적이다. 박주민 의원이 이달 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안을 발의해 상반기 중 국회 통과 계획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당·정·청 협의가 아니라 사실상 여권 주도의 검찰개혁 추진 움직임을 확인한 신 수석은 주변에 여러 차례 무력감과 괴로움을 토로했다. 신 수석은 사의 파동 전후 지인들에게 ‘이미 저는 동력을 상실했다’ ‘순리대로 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신 수석은 청와대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차에 검사장 인사를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패싱’까지 당하자 물러날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과 조율 중이던 인사안이 조율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법무부 측의 사전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발표된 것이다. 신 수석과 검찰에서 함께 일했던 변호사는 “신 수석이 '고작' 검찰 인사 때문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면서 “허수아비 민정수석은 될 수 없다고 고민하던 차에 '인사 패싱'이 신 수석 결심을 앞당긴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수석과 평소 연락을 주고 받아온 전직 검찰 고위간부는 "신 수석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판단해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수석은 지인들 연락도 차단한 채 자신의 거취에 대해 숙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신 수석 사의 파동이 차장·부장검사 등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법무부는 22일 검찰 인사위원회를 열어 당일 또는 다음날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신 수석이 복귀할 경우엔 ‘패싱’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충분한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쳐 발표시기를 조금 더 늦출 가능성도 있다.
다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신 수석 사의 파동 전부터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와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 등 중요 보직 공석을 채우는 수준의 '단촐한 인사'를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년 이상 자리를 지킨 검사들도 대부분 유임시킬 것으로 알려져 앞선 검사장 인사 때처럼 극소수 인원만 자리를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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