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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기 연계·기관장 평가제… '낙하산' 논란 대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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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기 연계·기관장 평가제… '낙하산' 논란 대안 될까

입력
2021.02.22 04: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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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반복 '낙하산·코드 인사' 논란
국정철학 공유 인사 무조건 비난은 곤란
정계·학계 "현실 정치와 법적 제도 괴리"
대통령 임명·책임지는 美 '플럼북' 거론
'깜깜이 인사' 임추위 독립성 개선 주장도
"민주성·전문성 모두 확보하는 게 관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사진은 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사진은 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법원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유죄 선고를 통해 정치적 임용 이른바 '코드 인사'에 제동을 걸면서, 공공기관 임원 인사 개선 관련 사회적 논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원하는 인사를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앉히기 위해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이들의 실적과 전문성, 그리고 임기와 관계없이 사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을 두고 '불법 관행'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내 편 챙기기 낙하산 인사'가 현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돼왔다는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발탁하기 위해 임원추천위원회 등이 도입됐지만, 정치권과 학계에선 실제 임용 과정이 개선되진 않았다고 평가한다. 김 전 장관처럼 법적 처벌까지 받게된 것 자체가 제도와 현실의 괴리 또는 정치와 행정의 충돌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공기관운영법에 기반한 현행 인사 제도는 실적과 능력을 바탕으로 임용해 임기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보여주기식 절차로 전락했다. 실제 공공기관 임원 임명 절차는 대통령 의중에 따른 집권세력의 논공행상을 기반으로 한 '엽관제' 성격이 짙다. 전문가들은 실적제와 엽관제의 장단점이 분명한 만큼,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한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 현실과 어긋나" 플럼북·임기삭제 등 제언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AFP 연합뉴스

정권이 바뀌면 새 국정기조에 따라 공공기관의 사업 방향과 추진 방식도 달라진다. 공공기관이 정책을 구체화하는 수단이 되는 만큼, 현행법이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임원 임기를 보장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정권 획득을 통한 국정운영이란 정치의 본질과 어긋나는데다, 현실적으로 선거 기여도에 따른 인사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출신의 한 인사는 "국정철학에 따라 대통령이 책임지고 인사하되, 국회 인준을 받고 이후 성과로 평가하는 제도를 고려해볼 때"라며 "정치 현실에 맞춰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낙하산 인사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 출신의 인사도 "정치 문제를 법으로 풀면서 형사처벌 리스크가 생긴 것"이라며 "현재 기관장 3년, 이사·감사 2년인 임기를 대통령 임기 5년과 맞춰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고 봤다.

참고할 수 있는 제도로는 미국의 '플럼북(Plum book)'이 대표적이다. 미 연방정부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임명직 후보명단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백악관 인사담당실(PPO)에서 공공기관 임원 후보자를 검증하도록 했고, 임원 임기 제한 없이 대통령 임기와 연계할 수 있도록 했다. 임원 선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장은 선출직이 아니기에 대통령 또는 대통령이 임명한 주무기관장이 책임 지는 구조가 돼야 민주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기와 관련해선 "감사의 경우 독립성이 요구돼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그 이외 임원에 대해선 임기 조항을 삭제해 정책 성과에 따라 해임할 수 있도록 하고,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성·자율성은 보장해야" 이사회·임추위 내실화 필요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대통령 국정철학을 고려하더라도 공공기관의 독립성·자율성은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앙정부보다 많은 예산을 지출하며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의 입지가 불안해지면 불필요한 혼란으로 운영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다. 공공기관 임원직이 선거 전리품으로 전락할 경우 전문성 없는 인사가 중책을 맡을 수도 있다.

해결책으론 각 기관 임원추천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투명한 운영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임추위는 공공기관 임원 인사 때 핵심 역할을 하지만, '깜깜이 인사' 등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아 비판을 받아왔다. 임추위 구성 인사가 기재부와 주무부처 장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독립적 의사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한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가 요구해도 심사위원 명단과 회의록을 제출하지 않는데, 투명히 공개를 해야 심사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활성화돼 공정해질 것"이라고 했다.

임추위 비상임이사 구성 비율을 축소하고, 내부직원 대표나 국회 상임위 추천 인사를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공공기관 낙하산 방지법'을 발의했던 채이배 전 의원은 "기관장을 정권 입맛에 맞춰 앉혀놓고 이사회와 임추위를 구성하면, 감시와 감독을 제대로 못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민주성·전문성 둘 다 잡아야" 중론

공공기관 지정 확대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공공기관 지정 확대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임추위를 폐지해 독립적 인사기구에서 공공기관 후보자 인재풀을 상시 관리하고, 기재부 검증기능을 국회에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은 "임추위는 유명무실이고 기재부는 인사 전문성이 있는 부처가 아니다. 전문가로 꾸려진 제3의 기관이 역할을 맡는 등 선임경로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정치적 성격의 보은인사가 필요하다면, 국가정책자문위를 꾸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임명하도록 할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

현행법이 전문성 기준을 '공공기관 업무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최고경영자의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일괄 제시한 것도 개선이 필요한 지점으로 지목된다. 미국은 임원 자격을 일괄 제시하지 않고 기관 특성에 따라 해당 분야 경험이나 관리 능력을 중심으로 개별법에 달리 적시한다. 영국과 일본, 프랑스 역시 일반적 요건은 제시하되, 기관 특성에 따라 필요 역량을 분석해 판단토록 했다.

결국 공공기관 임원 인사와 관련한 논란을 줄이려면 '민주성'과 '전문성'을 함께 담보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무현 상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성이 핵심인 기관은 정치적 책임에, 시장성이 강조되는 기관은 경영 효율에 초점을 맞춰, 임명권의 주체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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