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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사내, 백인이지만 인디언인 소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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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사내, 백인이지만 인디언인 소녀를 만나다

입력
2021.02.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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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행크스 주연 넷플릭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

중년 남자 키드는 우연히 만난 소녀 요한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려 한다. 여정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중년 남자 키드는 우연히 만난 소녀 요한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려 한다. 여정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중년 남자 제퍼슨 카일 키드(톰 행크스)는 떠돌이다. 미국 텍사스주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신문을 읽어준다. 오래 전 뉴스들이지만 문맹인데다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무지렁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유용하기만 한다. 키드는 뉴스 낭독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며 밥벌이를 한다. 그는 우연히 길 잃은 소녀 요한나(헬레나 쳉겔)를 만난다. 아기였을 때 인디언에게 끌려갔던 요한나는 이제 오갈 곳이 없다. 키드는 운명처럼 요한나를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길 곳곳엔 여러 위험이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된 영화다. 키드와 요한나가 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로드 무비 형식을 띠고 있고, 두 사람이 몇몇 총잡이와 벌이는 추격전은 정통 서부극의 면모를 품고 있다. 유사 부녀 같은 키드와 요한나의 교류는 가족 드라마의 정서를 전한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존 포드 감독의 고전 서부영화 ‘수색자’(1956)와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수색자’는 남북전쟁에 남부 동맹 군인으로 참전했던 보안관 폴리(존 웨인)를 스크린 중심에 둔다. 폴리는 패전 후 고향에 돌아왔는데 동생은 인디언에 무참히 살해됐고, 어린 조카 데비는 끌려갔다. 폴리는 데비를 구하기 위해 인디언 부족의 뒤를 쫓고 데비와 마주하게 된다. 이미 부족에 동화가 된 데비를 보고 폴리는 당황한다. ‘수색자’는 백인은 선, 인디언은 악이라는 전통적인 구도를 허물며 새로운 서부극의 틀을 모색한다. 주제의식이나 인물 구성에서 ‘뉴스 오브 더 월드’와 맞닿아있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수색자’보다 몇 발 앞서 나간다. 여러 은유로 지금 이곳에 주는 울림이 더 크다. 키드는 낡은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남북전쟁 후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전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뉴스는 읽지 말라는 악덕 자본가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진영 논리에 훼손된 현대 저널리즘에 대한 힐난으로 해석된다. 패전으로 열패감에 빠져든 남부 백인들은 인종주의에 경도돼 있다. 자신들이 다문화 사회의 피해자인양 행동하지만 정작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은 인디언이나 멕시코인 또는 흑인이다. 레드넥(미 남부 백인 하층민)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며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미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삶에 상처 받은 두 사람 요한나(왼쪽)와 키드는 서로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넷플릭스 제공

삶에 상처 받은 두 사람 요한나(왼쪽)와 키드는 서로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넷플릭스 제공


요한나는 상징적이다. 몸은 백인이지만 마음은 인디언이다. 인간의 정체성이 피부로 결정되는 게 아님을 새삼 웅변한다. 요한나는 변방 독일계 이민자 공동체 일원이었다가 인디언 무리를 거쳐 전쟁의 상처를 지닌 남자 키드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한 나라를 이룬 미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인종을 구분하고 백인 주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함을 역설한다(이민자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독일계 이민자 후손이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톰 행크스의 연기는 여전히 빛난다. 회한 가득한 키드의 삶은 행크스의 주름진 얼굴만으로도 공감을 얻는다. 13세 독일 배우 헬레나 쳉겔은 발견의 기쁨을 준다. 커다란 상실의 아픔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어린 영혼의 상처를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낸다. 짐승처럼 본능적인 공격성을 드러낼 때도, 맑은 웃음을 지을 때도 연기가 아닌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은 폴 그린그래스. 영화 ‘본’ 시리즈와 ‘캡틴 필립스’(2013) 등을 연출한 명장이다. 배우와 감독의 조합만으로도 눈길이 간다. 영화는 당초 지난해 극장 개봉하려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직격탄을 맞아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미국 작가 폴렛 질스의 동명 소설을 옮겼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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