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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계의 또 다른 재난

입력
2021.02.1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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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재난 이후 자살 유형에 변화
비정규직 많은 여성의 부담 더 커져
일자리 확충 등 안전망 강화 서둘러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자살 예방 목적으로 설치된 펜스와 문구. 류효진 기자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자살 예방 목적으로 설치된 펜스와 문구. 류효진 기자

국내에서도 코로나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된다. 접종 과정에 문제는 없을지, 이로써 코로나는 종식을 향할 것인지 기대 반 불안 반이다. 이미 접종을 시작한 나라가 여럿이지만 공급 부족 등으로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그러는 사이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중에 눈에 띄게 성공적으로 접종을 진행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시작해 이스라엘은 두 달 만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1차례 이상 백신을 맞았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백신 접종 효과는 90% 이상이다. 임상시험 결과와 유사한 낭보가 아닐 수 없다. 우리처럼 전 국민 의료보험 등 잘 갖춰진 의료체계에다 국민들이 접종에 적극 참여한 결과다. 인구 규모가 다르고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이스라엘만큼 속도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국내에서 접종이 시작되면 아마도 이스라엘 비슷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광범위한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코로나 상황은 극적으로 나아질 것이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11월까지 집단면역에 차질이 없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코로나가 지나가면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동이나 모임 제한이 풀리면 그 동안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분출할 수 있다. 강도 높은 봉쇄로 조기에 코로나를 수습한 중국에서 진즉 나타난 현상이다. 세계 증시가 미리 알려주는 대로 '보복 소비'가 실물 경제에 활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를 꺾고 난 자리가 희망만으로 가득할 리 없다. 각국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는 자살자 증가다. 주요 7개국(G7)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일본에서는 팬데믹과 무관하지 않은 자살이 최근 관심사로 부상했다. 우리처럼 자살자 줄이기에 고민해 온 일본은 1990년대 중반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치솟았던 자살자 숫자를 2008년부터 감소로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숫자가 지난해 11년 만에 다시 늘어난 것이다.

전년보다 3.7% 늘어났다는 통계를 뜯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남성 자살자 숫자는 감소했는데 여성과 청소년이 크게 증가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중·고 학생은 전년에 비해 무려 41%나 늘었다. 청소년 자살은 학업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 개학 시기에 숫자가 불쑥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코로나 상황에서 등교, 재택 수업을 오가면서 이런 심리적 압박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코로나 이후 일자리를 잃어 더 커진 경제적 어려움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중된 가정폭력 등이 거론된다. 일본에서 코로나 이후 해고된 사람의 66%가 여성이었다. 비정규직 중 여성 비율이 70%에 이르니 코로나로 모임과 이동이 위축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우선 해고 대상이 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통계청의 지난해 국내 자살 통계를 보면 11월까지 잠정치가 1만1,889명이다. 전년보다 나빠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처럼 남성이 줄어든데 비해 여성은 전년 수준 그대로다. 상대적으로 여성이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비정규직 중 여성 비율이 55%로 남성에 비해서 높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 늘어난 가사, 육아 부담이 직간접으로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거의 부동의 1위인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애를 쓰고 있지만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최근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는 심리 지원 강화 방안도 발표됐지만 상담 늘리는데 방점 찍는 정도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코로나로 1년 넘게 국내에서 약 1,540명이 숨졌다. 같은 기간 그 규모의 8배가 소중한 목숨을 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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