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정율성'을 소환했을까...
"윤동주 中 출생, 당시 조선은 식민지" 지적
중국 귀화 정율성 거론, 인민해방군가 작곡?
둘 모두 한중 '경계인' 부각, "교류 모델" 포장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왜곡한 중국의 대응논리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조선이 국권을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으로 귀화해 3대 혁명 음악가 반열에 오른 독립운동가 겸 작곡가 정율성 선생을 거론하며 ‘중국 국적’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국청년망, 환구시보 등 관영 매체들은 17일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윤동주의 국적 논란을 과장하고 허위로 포장해 한국인들의 민족 정서를 부추기고 양국의 교류를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윤동주 시인 순국일을 맞아 “중국 포털 바이두에 윤동주의 국적은 ‘중국’, 민족은 ‘조선족’으로 표기된 것에 재차 시정을 요구했다”고 밝히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중국의 논리는 두 가지다. 윤동주 시인이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났고, 1917년 출생 당시 조선은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건국되지 않아 중국 국적법상 한국 국적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매체들은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본인의 국적에 대해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중국은 정율성 선생을 소환했다. 윤동주 시인처럼 일제시대 한국과 중국에 걸쳐 ‘경계인’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부터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1933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원으로 항일투쟁을 지속했다.
특히 ‘중국의 승리가 곧 조선의 승리’라고 판단해 일제에 맞서 중화민족의 애국혼을 북돋는 곡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중 ‘팔로군 행진곡’은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로 불리고 있다. 중국이 ‘최고의 음악가’라고 그를 칭송하는 이유다. 해방 후에는 북한으로 건너가 해주에 음악전문학교를 설립하고 평양에서 조선군 협주단을 창설해 단장을 맡았다. 1951년 돌아와 중국으로 귀화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처럼 글로벌한 배경을 가진 역사적 인물은 국가 간 교류 증진을 위한 모델”이라며 대표적 사례로 윤동주와 정율성을 꼽았다. 2005년부터 매년 광주에서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열고 한중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이 정율성을 부각시키는 이면에는 윤동주 시인의 국적 변경은 어림없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정율성의 국적도 중국인데, 왜 한국이 중국 태생인 윤동주의 국적을 문제 삼느냐는 것이다. 다만 김치, BTS, 한복 등을 놓고 한중 네티즌이 잇따라 상대방을 자극하며 감정이 격해졌던 논란을 의식한 듯 “이성적 대화와 교류를 통해 양국이 화해하길 바란다”면서 “윤동주 국적 문제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게 맡기자”고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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